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7. 14. 23:00

사형 직전 목숨을 건진 도스토예프스키!

그러자 그들은 그의 눈 주위에 어두운 밤의 띠를 둘렀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이제 피가 색깔을 가지고 돌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비추어주는 물 속에서,
이미 지나가버린 삶이
피로부터 솟구쳐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음에 바쳐진 이 일초의 순간이 
한번 더 자기 영혼을 통과하며
잃어버린 모든 과거를 씻어버리는 것을 느낀다.
그의 전일생이 다시 깨어나서
그림이 되어 그의 가슴을 유령처럼 스쳐간다.
창백하고 잃어버린 잿빛 유년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아내,
세 개의 파편 같은 우정, 두 잔의 즐거움,
명성의 꿈, 한 더미의 수치.
그리고 그림으로 된 충동이 잃어버린
청년시절을 혈관을 따라 굴린다.
그들이 자신을 기둥에 묶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살아온 전존재를
그는 한번 더 깊은 내면으로 느낀다.
사려깊은 생각이 어둡고 무겁게
그 자신의 그림자들을
그의 영혼 위로 던진다.
그리고 그때
그는 누군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검고, 침묵하는 걸음걸이를 느낀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그가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려 놓는 것을.
심장은 점점 약하게…… 약하게…… 그러다가 이제 더는
뛰지 않는다 ―일분이 지나면 ―그러면 끝이다.
코사크 사람들은
저편에서 사격을 위해 대열을 이룬다……
총을 멘 벨트는 흔들리고……
손들은 방아쇠 소리를 내고……
북이 울려서 공기를 가른다.
그 일초는 수천 년 나이를 먹게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중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다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풀려난 적이 있다. 
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의 내면 심리를 뛰어난 전기 작가이기도 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사람은 죽기 직전 자신의 전 생애를 찰나로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가족들과의 사소한 일상들, 자신이 평생 쌓아 올렸다고 믿어왔던 한 웅큼의 명예, 때때로 저질렀던 부끄러움들...
그리고, 자신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같은 절망감에 분노를 터뜨리던 어느 한 때...
이런 것들이 스쳐가는 순간에 우리 각자 다다랐을 때, 어떤 것이 회한으로 남을까?
그걸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 인간들은 보다 완벽한 삶을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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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 싱거운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7. 11. 02:19

골프가 내 몸을 망친다 ???

저자 :  사이토 마사시(의학 전문의, 안티에이징 분야의 대가)
감수 :  서경묵(중앙대학교 재활의학과장, 대한골프의학회 회장)

주말 골퍼들에게는 오늘(금요일)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전략(^^)을 가다듬는 날!
필드로 출정하기 전에 한번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국 여행을 갔다 기차를 타기 전 뭐 볼게 없나 서점을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
골프가 내 몸을 망친다꼬???   왜...  
몸에 좋다고 너도 나도 권하는 골프를... 웬 초치는 소린감...^^

느긋하게 자리에 기대어서 보다가 점점 내 자세가 바로서기 시작했는데...


"골프란 1백 개의 핑계로 성립된 게임이다. 만약 골프에서 핑계를 뺀다면 녹슨 클럽과 잡초 무성한 페어웨이만 남을 것이다." ^^

"골프란 20%는 mechanics(기계적인 역학)와  technique(기교, 기술)이고,  나머지 80%는 철학, 로망스, 멜로드라마, 교제, 동지애, 고집스러움. 대화이다. "

이런저런 말들에 많은 골퍼들은 미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터...
자, 그럼 어떻게 이 매력적인 골프를 건강하게 즐길 것인가?

역시 전문가의  의견이 도움이 될 터....
이 책을 쓴 사이토 마사시는 스스로 골프로 몸을 망쳐본 경험이 있는 장본인이면서 하루에도 수십 명씩 골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이다. 또한 NGF(미국골프재단)에서 전문가 과정 레슨을 받은 골프광이기도 하다. 

아래 항목 중에 5개 이상 해당된다면, 당신도 골프로 몸을 망치는 사람!
"지금 당장, 당신의 골프 습관을 바꿔라!"

*  골프 친 다음날엔 허리가 아프다
*  골프 전 날, 술 약속을 피하기가 힘들다
*  골프와는 상극이므로, 근력운동을 피하고 있다
*  라운딩 중에는 카트를 타는 편이 효율적이다
*  비거리는 길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  첫 홀의 1타에서 갤러리들의 눈치가 보여 실력보다 무리해 친 적이 꽤 있다
*  골프 치기 전, 내  혈압이나 체온에 대해 신경을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  골프의 참맛은 누가 뭐래도 라운딩 중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다
*  연습장에서 늘 하루에 200구 정도의 드라이버 샷을 친다
*  골프에서의 부상은 전쟁터에서 얻는 훈장과도 같다
*  골프장에서의 돌연사 따위는 남의 얘기다
*  내 골프의 궁극적 롤 모델은 타이거 우즈다

당신은 몇 가지 항목에 해당되세요?  ^^
 
☞ 건강한 골퍼가 되는 비결 

 1. 슈퍼 샷의 환상, 비거리라는 유혹을 조심하라!

    우연히 친 매력적인 빅샷!
    그 한 번의 마력 때문에 결국 몸을 망치게 되는 숱한 골퍼들!!!  ㅠ.ㅠ
    타이거 우즈는 날마다 8km의 러닝을 하고, 100kg이 넘는 바벨을 들며 웨이트 트레이니을 한다. 풀스윙으로 비거리를 올리려고 한다면 우선은 원심력을 견뎌낼 수 있는 향심력 즉, 토대가 될 강인한 하체부터 길러야 한다.

2. '잘 치는 골프' 이전에 '기본이 갖춰진 골프'를 하라!

 - 골프 전 날, 혹은 라운딩 도중의 음주는 곧 자살행위다.  
 - 또한 라운딩 전날의 숙면은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무엇보다 젊어지는 골프를 위해 필수사항!!!
 - 골프 당일 아침 식사! 이것은 골프 서적 10권 읽는 것보다 중요. 아침식사는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한다. 무엇보다 머리로 치는 골프를 지향한다면 뇌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을 잊지 마라.
 - 스트레칭 없는 골프는 준비운동 없는 마라톤만큼이나 위험하다.

3. 몸의 힘을 빼고, '20%의 힘'으로

 - 몸을 망쳐도 좋으니 풀스윙을 하고 70세가 되기 전에 골프세계로 부터 은퇴할 생각이라면,  비거리를 길게 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는다 ???
 - 건강을 위한 골프를 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스윙 자세'다. 당신이 가진 파워의 최대 70% 까지만 사용하되, 정확히 원하는 위치에 볼을 올려 좋을 수 있는 스윙 방법을 터득하라.
 - 기억하라. 골프는 타깃 게임이다. 멀리 날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즐거운, 건강한 골프가 가능해진다.

4. 골프, 몸을 쓰기 전에 머리를 활용하라.

 안티에이징의 관점에서, 골프는 뇌를 젊어지게 하는 가장 좋은 운동 중의 하나다. 목표 지점을 공략하는 타깃 게임인 이유로, 순간적인 순발력이나 감각보다는 몇 타 앞을 내다 보는 전략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 타구 메모의 생활화와 복습으로 기억 화상효과를 노려라.
  - 평상시 머리를 쓰는 취미, 감각 익히기로 뇌를 활성화하라.
  - 감각에 의한 골프가 아니라 기록과 분석에 의한 골프를 하라.
  - 남보다 앞서 분석하고 준비하면, 골프가 더 즐거워진다.

5. 건강해지는 '라운드 습관'을 정착시켜라.

  건강을 위해서 치는 골프, 특히 중년 이후의 장수와 안티에이징을 위한 골프를 원한다면...
  -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라운드 습관을 가져라.
  - 라운드 내내 '체온을 1도 올린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자.
  - 갈증이 난다고 맥주를 마시는 것은 금물, 소변 색깔을 확인해 물과 이온음료를 적적히 섭취하자.
  - 라운드 전날엔 잠들기 4시간 전 공복상태를 유지하자.
  - 라운드 당일, 구연산 사이클을 활용한 식사를 하자.

6. 오랫동안 골프를 즐기려면 노화로부터 자유로워져라.

  - 겨울철은 혈압과 심장의 옐로우 존(yellow zone), 조금 더 신경 써라.
  - 몸의 노화 못지않게 눈의 노화 역시 골프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적이다. 잭 니클라우스의 은퇴 이유를 상기하라.
  - 뼈가 튼튼해지려면 실외에서 운동하라.
  - 근육은 하체부터, 노화는 성장호르몬의 부족에서 시작하므로, 젊은 운동습관을 유지하라.

7. '5가지 몸 나이' 젊어지게 하는 안티에이징 비법

  - 호르몬 나이를 줄이려면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습관을 길러라.
  - 근육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근육 나이를 줄이는 하체 운동을 생활화하자.
  - 신경 나이는 순발력의 잣대다. 근육 강화 훈련 때 최고점 기법을 잊지 말자.
  - 혈관 나이의 최대 적은 담배와 술이다. 무조건 피하라.
  - 뼈 나이를 젊어지게 하려면 햇볕을 충분히 쬐는 산책이 최고다.

골프로 더욱 젊어지는 당신의 그린 라이프(Green Life)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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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7. 1. 07:55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  것이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의 『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오랫만에 뜨거운 한여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웅전에  앉아  있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한가함과  소박함 그리고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처럼,
살면서 자신이 살아온 자리를 잘 마무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26. 13:22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비용이 들지 않지만 많은 것을 준다.
주는 이가 가난하게 되지 않으면서도, 
받는 이를 풍요롭게 한다.
잠깐이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때로 영원하다.
아무리 부자라도 이것이 필요 없는 사람은 없고,
아무리 가난해도 이걸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가정엔 행복을 더하고, 
사업엔 촉진제가 되고,
친구 간엔 우정을 돈독하게 만든다.
피곤한 자에겐 휴식이 되고,
좌절한 자에겐 용기를 주며,
슬퍼하는 자에겐 위로가,
번민하는 자에겐 자연의 해독제가 된다.
돈을 주고 살 수도 없으며, 빌릴 수도 없고 훔칠 수도 없다.

                                                                    -랍비 S.R.허시

                                                                                +_+  이것은 '미소'           

심리학 박사인 이민규님의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에서 다시 퍼 온 글입니다.

이 책은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셀프 리모델링 25'라는 부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첫만남부터 관계가 발전하는 단계 그리고 꾸준히 지속되는 만남이 되기 까지의  인간 관계를 심리학적 분석을 토대로 해서 어떻게 스스로를 '끌리는 사람'이 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비법(?)을 적어 놓은 책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 글을 읽어 보신다면...이거 내가 다 아는 이야기잖아!...라고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라는 제목의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관계를 원만하게 이끄는 원칙들, 그것은 이미 다 아는 얘기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원칙이 떠오르세요? ^^)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라도 실천하느냐의 문제이겠죠?
이 책에서는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잠시 쉬고 생각할 수 있는 페이지가 들어 있습니다.
사실 좋은 이야기도 너무 넘치게 듣다 보면 그게 다 그것 같아지죠.
그래서 stop&think라는 페이지를 따로 마련해 놓았습니다.
잠시 쉬면서 차와 함께 명상의 시간을 가져 본다면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무거운 일하는 사이사이에 어느 한 페이지 펼쳐 놓고 오늘 만날 누군가에게 한가지쯤 실천해 본다면 당신도 1% 다른 사람이 되어 가리라 믿습니다.
오늘 저는 '미소'라는 페이지가 마음에 들어서 올립니다.
미소 짓는 하루 되세요!


김훈의 장편 소설 '남한산성'을 오래도록 읽었다.

맨처음 '칼의 노래'를 읽곤 그 문체의 독특함이 내게 질투(?)감을 불러 일으켰다. 웬 질투? 쨉도 안 되는게...사실 그렇다.(ㅠ.ㅠ)  그래도 나는 무척 질투가 났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 감정을 배제해 버린듯한 언어들, 툭 던지듯이 쓴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책을 다 읽었을 때, 이순신의 초라한 집무실 벽에 걸려 있었을 '면사첩'(죽음을 면해 주겠노라는 왕으로부터의 첩지) 세 글자가 내내 떠나지 않았다. 전장 중에 그 글자를 내내 마음 속에 품고 살았을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묵직하게 걸렸었다.


그리고 다시 '남한산성' !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문장으로 발신(몸을 세운)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다.
이 책에서는 정말 많은 '말'들이 서로 칼날처럼 겨루고 있다. 
서로가 선 입장에 따라 바로 적이 되기도 한다.

 청나라 군사들이 서북 이북으로 쳐들어왔으나 도원수, 평양 감사 등이 이를 막지 못했으니 그들의 목을 베고 그 처자식들도 군율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의정 김류의 말을 듣고는 인조 임금이 하는 말.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그러하되 적병이 이미 도성을 에워싸서 왕명이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서북 산성에 군율이 닿겠느냐?"
임금은 또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경은 늘 내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강력하게 신하를 처리할 수도 없는 왕의 처지에서 시니컬함과 서늘함을 담은 한 마디! 

경은 늘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임금의 말투는 장님이 벽을 더듬는 듯했다. 임금은 먼 곳을 더듬어서 복심을 찔렀다. 임금의 더듬는 말투 속에 숨겨진 칼의 표적이 도원수인지, 영의정인지, 김류는 알 수 없었다. 꿇어앉은 대열의 뒤쪽에서 정삼품 당상들은 더욱 몸을 낮추었다.
...부딪혀서 싸우거나 피해서 버티거나 맞아들여서 숙이거나 간에 외줄기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길들이 모두 뒤섞이면서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김류는 그 말을 참아내고 있었다.

남한 산성이라는 좁은 공간에 몰려 들어 임금과 신하가 그리고 백성이 함께 부대끼게 된 상황! 
그것도 임금은 강력한 적 앞에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이름만 남은 입장이고. 
또 신하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임금이 있어야만 신하라는 우월한 자리가 보존될 수 밖에 없는 처지...
그리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높은 양반들을 머리에 이게 된 백성들!
싸울 수 없는 처지에 놓여진 이들에게 어떤 말들이 그들을 살리게 될 것인가?
주화파든 주전파든 그들을 그 산성에서 밖으로 나오게 한 말들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산성을 에워싸고 있는 청군 사이에 칸이 직접 왔다는 정보를 듣고 신하들이 논쟁을 한다.
  김상헌이 말했다.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임금이 김류를 바라보았다. 김류는 감았던 눈을 뜨면서 임금의 시선을 받았다. 임금의 시선은 말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류가 말했다. 
-칸이 왔다면 어쨌거나 성이 열릴 날이 가까이 온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날짜가 다가옴을 아뢴 것이옵니다.
임금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 (^^)...   이렇게 간결하게 작중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다니!

이 책을 읽는 내내 성 안에 갇힌 임금의 처연함과 무력함이 걸거적거렸다.
1636년 12월 14일에서 1637년 2월 2일까지  남한산성에는 임금이 있었다.
그리고 무수한 "말"들이 오고 갔고, 또 쓰러져갔다.
 
'말'이란 이렇듯이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무게를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걱정도 된다.  
임금이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면 신하들이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나 할까? 
 말이란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타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그 말의 참뜻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10. 23:33

최인호의 머저리 클럽

나는 남의 집에 가면 책꽂이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많이 궁금해 하는 편이다.
그러다 내가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취향의 책을 발견하곤, 뜻밖의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요즘 최인호 작가는 상당히 역사(가야, 고구려 이야기)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머저리 클럽이라는 고교 시절을 회상하는 글이라니 좀 의외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최인호하면 '별들의 고향', '고래 사냥'을 떠올리게 되고, '경아'라는 여자 아이 이름을 부르던 느끼한(^^) 배우의 목소리를 그리고 대학 시절에 번화한 시내에 나가면 꼭 있던 '별들의 고향'이라는 이름의 주점들...그런 것들이 먼저 연상된다.

머저리! 스스로를 머저리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면서도 꿀리지 않으려면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1970년대를 고교 시절로 보내는 보내는 여섯 악동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나'(동순)가 고1에 올라가 다른 중학교에서 전학 온 영민이라는 아이와 중학교 동창인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머저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패거리를 만들면서 함께  겪는 각자의 성장기랄 수 있다.

나름(?) 건전하게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 다섯 명과는 좀 다른 녀석이 바로 영민이였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주제에 조금도 기가 죽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 5분 씩 늦는 것은 예사고, 도시락도 1교시가 마치자마자 바로 까먹기도 하고...그래서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합세하여 영민에게 시비를 걸게 되고, 덩치가 작아 매일같이 동순 패거리에게 얻어 맞으면서도 끝까지 싸움을 붙는 영민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러다  친해지게 된다.
조금 웃자란 영민의 합류로 머저리 클럽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고...

오랫만에 향수에 젖어서 글을 읽었다. 교복을 항상 입고 다녀야 했고, 까까머리를 숨기기 위해서 남학생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어른인 척하고...모표가 잘 안 보이도록 모자를 있는대로 구겨다니는 치도 있었고...여학생에게 말 한번 걸려고 자기가 타지도 않는 버스를 괜히 볼일이 있는 것처럼 타고는 말도 못 붙이고 내리기도 하고...그런 때가 있었지하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학창 시절은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눈 내리는 날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고 낙엽 흩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슬픔에 잠겼던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성스러운 시간이 일 초 일 초 흘러가고 있음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서문에서

까까머리 교복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절을 즐겁게 돌아 보게 될 것 같다.
"친구야! 잘 있었나?"  전화라도 한 번 해 볼까?



이 책은 지금까지 풀마라톤 코스를 25회나 완주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와 관련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그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무나 세세한 심리 묘사와 내면에 대한 탐구는 나를 좀 지치게(^^) 한다.  사건 전개가 다양하게 전개되는 추리 소설류들을 좋아하는 관계로 그의 작품들은 몇 번 읽으려고 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그가 대단한 달리기에 관한 마니아이고, 또 이번에 그의 삶과 달리기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고 해서 책을 구입하자 마자 읽기 시작했다.

그는 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소설가와 마라토너! 언뜻 생각해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그의 글을 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다.

하루키는 소설가가 되기 전 재즈 클럽을 운영해 왔었다. 밤낮으로 바쁘게 3 여년 간을 움직인 결과 수입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야구 경기를 보다 문득 지금쯤이면 좋은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실천에 옮기게 된다. 그렇게 쓴 첫 작품이 문예지의 신인상에 당선하게 된다. 20대의 마지막 가을의 작업이었고, 다음 해 여름엔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처음엔 클럽 운영과 글쓰는 작업을  같이 하다 본격적으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이 서른 초반에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막 전업 소설가가 되고는 맨 처음 직면한 심각한 문제는 건강의 유지였다고 한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다보면 몸은 굳어지게 되고 배만 나오게 된다. 그래서 하루키는 스스로 육체 노동이라고 할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 증진에 가장 효율적이고 지구력과 집중력을 길러주는 달리기를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인생의 한 분기점 같은 세른세 살,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그런 나이에 나는 장거리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고 쓰고 있다.
그때 이후로 매년 한 번 씩은 풀 마라톤 코스를 뛰고 있다고 하니 대단한 집념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나는 올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에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계절이 순환하고 해가 바뀌어간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5. 05:07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짧은 이야기의 거장이라고 알려진 마르셀 에메의 소설집이다.
모두 5편의 짧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짧은 이야기...그러나...긴 여운!!!

여기 실린 글들에 대한 가장 간단한 감상이다.

그 다섯 편의 이야기 중 하나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이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라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그가 죽은 뒤 세워진 동상의 모습도 사람 하나가 건물 벽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듯한 모습이라고 한다.
 
등기청의 하급 직원으로 그냥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뒤티유욀이라는 남자가 어느 날 자신에게 벽을 뚫고 나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작가는 그를 매우 선량하고 겸손하지만 자긍심이 강한 남자라고 써 놓았다. 그런 그에게 새로 부임한 과장이 뒤티유욀을 골방으로 내쫓고 또 자신이 쓴 편지를 걸레같다느니, 형편없는 쓰레기라는 둥 고함을 치곤 타성에 젖은 바퀴벌레라고 욕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대놓고 한 마디도 못하던 뒤티유욀은 갑자기 영감에 사로잡혀 자기 방과 과장의 방을 가르는 벽 속으로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는 과장에게  욕을 해 댄다. 마침내 노이로제에 걸려 과장은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고...

 드디어 자신을 능력을 깨달은 뒤티유욀은 자기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고, 신문에 실리는 도난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일부러 잡혀 감옥도 체험하지만 그것도 싫증을 내고는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길 꿈꾼다. 그러다 어떤 여인에게 갑자기 연정을 느끼고는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있는 여자라 남편이 외출한 틈에 몰래 벽을 통과하여 만나야만 했다. 
여인과의 뜨거운 만남을 가진 그 다음날, 두통에 시달리던 그는 서랍 속에 들어있던 알약을 아스피린으로 생각하고 먹는다. 그리고 그날 밤 여인과 다시 만나 재회하여 사랑을 나눈 뒤, 그녀 곁을 떠나 벽을 통과하던 뒤티유욀은 어떤 저항을 느끼고 담벽에 갇히고 만다.

문득 뒤티유욀은 낮에 먹었던 알약 때문이었음을 깨닫는다. 지난해에 의사가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없애기 위해 처방해 준 바로 그 약! ---약 성분이 재밌다. 쌀가루와 켄타우루스 호르몬의 혼합물인 피레트 가루 정제라고...약을 먹고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라고 처방한 것.---
그 약을 복용한데다 힘을 격렬하게 사용한 효과가 더해져서 의사의 처방이 갑작스레 효험을 나타낸 것이다.

...지금도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의 네거리를 지나칠 때 희미한 탄식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은 뒤티유욀이 찬란한 행로의 종말과 너무도 짧게 끝나버린 사랑을 한탄하는 소리다....

독특하고 약간은 괴기스러운 소재에다 사회에 대한 풍자와 유머가 깔려 있는 에메의 작품은 어이없게 끝나버린 그의 인생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허무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머지 이야기는 <생존 시간 카드>, <속담>, <칠십 리 장화>, <천국에 간 집달리> 4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생존 시간 카드>가 제일 인상 깊다. 사람마다 한 달에 살 수 있는 날짜가 정해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 달에 15일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당신의 기분은? 또 시간을 어떻게 쓰게 될까? 사회적으로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게 될까?  등등 재밌는 생각 거리들이 많을 것이다. 
책을 덮은 뒤에도  많은 생각과 울림을 주는 글이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2. 22:58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 시집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1969년 6월 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5년만인 1994년 완성하다.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별세, 통영시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 안장되다.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이 책에는 39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에는 산골에서 칩거해 사는 이의 외로움과 소박한 삶, 매일의 노동이 묻어나는 흙냄새가 절절이 배어 있다.
자신의 출생,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다는 것'이란 이 시에서 마지막 연이 참 눈물겹다.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지금 놓여 있는 나의 삶이 너무 힘겨웁다고 느낄 때는 그저 진저리만 치게 된다. 또 그 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어느 날 나도 나이 들어 힘든 시절을 되돌아 보며 '그래도 그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하게 될까?
젊은 날에는 당연히 안 보이는 것인가?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이른 봄/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나를 지탱해 주었고/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모진 세월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이란 시다.
작가의 서릿발같은 삶이 느껴지는 시다. 차가운 밤에 홀로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메워 나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홀로 앉아 그 긴장감을 내내 견지하며 살아온 삶! 결코 녹녹할 수 없는 삶이다. 그래서 모진 세월가고...이제 늙어서 편안하다고 한 것일까?

 내게 있어 '박경리' 하면, 몇 가지 장면이 연상된다.
학창 시절 '김약국의 딸들'에 빠져 들던 내 모습과 '토지'가 드라마 되었을 때 주인공 서희의 꼿꼿한 모습.  그리고 간혹 잡지에 인터뷰 기사라도 실리면 항상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작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참 자연스러워서 당당하게 느껴졌고, 오만한 서희의 모습도 연상되었다. 

이제 또 한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들 각자는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까?

소설, 영화와 만나다 | Posted by Book Hana 2009. 6. 2. 00:56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로 최근에는 영화로 개봉이 되기도 했었던 작품이다.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헌신'이라는 말이 걸렸다. '헌신'이라는 말은 몸을 바치다. 즉, 자신을 희생하여 기꺼이 남을 구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헌신'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싶었다.

천재적인 수학자로 수학에 모든 것을 바치던 즉 '헌신'하던 이시가미!  이시가미는 우연히, 옆집에 살던 모녀가 저지런 살인 사건에 끼어들면서 그의 천재적인 머리는 완벽한 범행의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의 도움을 받아 모녀는 큰 어려움없이 살인 혐의를 벗어갈 즈음,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한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가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차츰 그 완벽한 알리바이가 베일을 벗게 되는데...

소설의 첫 장면은 이시가미의 무미건조한 일상의 묘사에서 시작된다. 세상사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의 시선, 하지만 그주변에 대한 관찰은 예리하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신오하시교를 지나며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하여 자잘한 일면까지도 파악하고 있다. 사소한 단서로 많은 것을 통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세상으로터의 단절감을 안고 살아가던 이시가미에게 유일하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시가미가 자살하려는 순간 밝고 환하게 웃으며 옆집으로 이사왔다며 첫인사를 건넸던 아스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하직하려는 순간 만난 그 모녀는 그가 유일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옆집에서 들려오는 모녀의 대화로 그의 인생은 새로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여태까지 그의 생이 수학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이었다면, 이제 그는 모녀에 대한 남모르는 '헌신'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모녀에게 위험이 닥치자, 이시가미는 당연히 그 둘을 보호하기 위해서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게 되는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명할 수 없는 완벽한 알리바이!
여기서 이시가미의 '헌신', 아무 댓가없는 절대적인 사랑이 바쳐진다.

하지만 역시 천재적인 물리학자인 유가와에 의해서 서서히 그 완벽한 헌신이 흔들리게 되는데...

추리 소설의 즐거움은 어떻게 열쇠가 풀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유가와에 의한 추리에 따라 서서히 흔들리는 이시가미의 가설이 절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보통 추리 소설을 읽을 때면 살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주 관심사이지만 이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유가와의 날카로운 추적이 안타깝기만 했다. ^^

하루 꼬박 이 소설을 읽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날, 머리 속에는 온통 이 이야기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는 영화를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시가미보다는 좀 잘 생긴 배우가 나왔다. 그의 표정이 아주 무미건조하고 까칠하게 나타난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영화는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거기서 사용하는 대사도 아주 똑같다.
물론, 영화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이시가미와 유가와가 눈덮힌 설산을 오르는 장면, 유가와와 여형사간의 러브 라인도 살짝 더해지긴 했지만...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역시 결말 부분에서의 반전에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의 결말에 다다른 독자라면 누구나 이 글의 제목 '용의자의 헌신'이라는 말에서 '헌신'이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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