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12. 8. 22:48

공무도하-님이여, 강을 건너지 마오!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_여옥의 노래





공무도하가! 정말 까마득한 옛날 학창시절에 들어본 기억이 있는 단어이다.
당시에는 내용도 자세히 모르고 구전문학의 이름으로 구지가, 헌화가, 공무도하가 등의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있다.
왜 그 당시 선생님들은 그러한 노래들의 배경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지 않고 제목만 외우라고 하였을까?
 아마 사랑에 관한 노래라서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어야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가르쳐 주었는데, 내가 흘려 들었는지도......   

---'공무도하'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훈의 공무도하 책 표지에 있는 내용이다.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강 저편은 정의와 진실이 있는 세상이고, 이쪽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작가의 이전 직업이 신문기자였으니, 사회의 구석 구석 어두운 곳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 어두운 면을 세상에 낱낱이 내어놓고 큰소리로 외쳐보고 싶었지만, 그러하지 못한 때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져야만 한다고 믿는 것들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것들의 한계는 어디인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훈의 글 스타일을 좋아한다.
우선 깔끔하다. 절제된 표현은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글자만 읽을려면 쉬이 내달릴 수 있으나, 새겨 읽으려면 때로는 만만치 않다. 이전의 '남한산성'에서도 그랬고 이번의 '공무도하'도 그렇다. 어떨 때는 선문답집을 읽는 느낌마저 든다.
하여튼 그의 글은 독자의 소화능력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공무도하'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작품 인물의 하나인 장철수가 내뱉은 이 말이 아닐까 싶다.

현실적인 등장 인물들을 내세워 이야기를 꾸려가는데, 작가는 누가 옳다 그르다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실이 그렇다고만 이야기한다. 
등장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비리사실을 발견하고도 기사화하지 않는 신문기자, 운동권 동료를 고발하고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운동권 출신, 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슬쩍하고도 상까지 받는 소방관, 등등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각자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어쩐지 개운하지가 않다. 
그래도 왜 책 제목을 '공무도하'로 정하였는지는 이해가 된다. 
강을 헤엄쳐 건널 능력이 없어도 백수광부처럼 걸어서라도 넘어려고 시도라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예 강 건너편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말아야 하는지?      

만일 우리가 이 소설 등장인물의 하나로 등장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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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장편 소설 '남한산성'을 오래도록 읽었다.

맨처음 '칼의 노래'를 읽곤 그 문체의 독특함이 내게 질투(?)감을 불러 일으켰다. 웬 질투? 쨉도 안 되는게...사실 그렇다.(ㅠ.ㅠ)  그래도 나는 무척 질투가 났었다.

...군더더기 없는 짧은 문장, 감정을 배제해 버린듯한 언어들, 툭 던지듯이 쓴 것 같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책을 다 읽었을 때, 이순신의 초라한 집무실 벽에 걸려 있었을 '면사첩'(죽음을 면해 주겠노라는 왕으로부터의 첩지) 세 글자가 내내 떠나지 않았다. 전장 중에 그 글자를 내내 마음 속에 품고 살았을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 묵직하게 걸렸었다.


그리고 다시 '남한산성' !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임금의 몸이 치욕을 감당하는 날에, 신하는 임금을 막아선 채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는 백성들이 살아남아서 사직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문장으로 발신(몸을 세운)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이 책의 첫 페이지다.
이 책에서는 정말 많은 '말'들이 서로 칼날처럼 겨루고 있다. 
서로가 선 입장에 따라 바로 적이 되기도 한다.

 청나라 군사들이 서북 이북으로 쳐들어왔으나 도원수, 평양 감사 등이 이를 막지 못했으니 그들의 목을 베고 그 처자식들도 군율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는 영의정 김류의 말을 듣고는 인조 임금이 하는 말.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그러하되 적병이 이미 도성을 에워싸서 왕명이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서북 산성에 군율이 닿겠느냐?"
임금은 또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경은 늘 내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강력하게 신하를 처리할 수도 없는 왕의 처지에서 시니컬함과 서늘함을 담은 한 마디! 

경은 늘 가까이 있으니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임금의 말투는 장님이 벽을 더듬는 듯했다. 임금은 먼 곳을 더듬어서 복심을 찔렀다. 임금의 더듬는 말투 속에 숨겨진 칼의 표적이 도원수인지, 영의정인지, 김류는 알 수 없었다. 꿇어앉은 대열의 뒤쪽에서 정삼품 당상들은 더욱 몸을 낮추었다.
...부딪혀서 싸우거나 피해서 버티거나 맞아들여서 숙이거나 간에 외줄기 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 터이고, 그 길들이 모두 뒤섞이면서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김류는 그 말을 참아내고 있었다.

남한 산성이라는 좁은 공간에 몰려 들어 임금과 신하가 그리고 백성이 함께 부대끼게 된 상황! 
그것도 임금은 강력한 적 앞에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이름만 남은 입장이고. 
또 신하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임금이 있어야만 신하라는 우월한 자리가 보존될 수 밖에 없는 처지...
그리고 이리저리 치이면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높은 양반들을 머리에 이게 된 백성들!
싸울 수 없는 처지에 놓여진 이들에게 어떤 말들이 그들을 살리게 될 것인가?
주화파든 주전파든 그들을 그 산성에서 밖으로 나오게 한 말들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산성을 에워싸고 있는 청군 사이에 칸이 직접 왔다는 정보를 듣고 신하들이 논쟁을 한다.
  김상헌이 말했다. 
 -전하, 명길은 전하를 앞세우고 적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려는 자이옵니다. 죽음에도 아름다운 자리가 있을진대, 하필 적의 아가리 속이겠나이까?
  최명길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전하, 살기 위해서는 가지 못할 길이 없고, 적의 아가리 속에도 삶의 길은 있을 것이옵니다. 적이 성을 깨뜨리기 전에 성단을 내려주소서.
  임금이 김류를 바라보았다. 김류는 감았던 눈을 뜨면서 임금의 시선을 받았다. 임금의 시선은 말을 요구하고 있었다. 김류가 말했다. 
-칸이 왔다면 어쨌거나 성이 열릴 날이 가까이 온 것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날짜가 다가옴을 아뢴 것이옵니다.
임금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영상의 말은 나무랄 데가 없구나' (^^)...   이렇게 간결하게 작중 인물의 성격과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다니!

이 책을 읽는 내내 성 안에 갇힌 임금의 처연함과 무력함이 걸거적거렸다.
1636년 12월 14일에서 1637년 2월 2일까지  남한산성에는 임금이 있었다.
그리고 무수한 "말"들이 오고 갔고, 또 쓰러져갔다.
 
'말'이란 이렇듯이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무게를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쓸데없는 걱정도 된다.  
임금이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면 신하들이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나 할까? 
 말이란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야 할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타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그 말의 참뜻을 잃어 버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