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11. 5. 13:47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지만...



     아프리카의 갈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지만
아프리카 한복판 가뭄에 굶어 죽은
수십 만의 이디오피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갈대였을까.
갈대같이 말라서 쓰러져 죽고 마는
아무 생각 못 하는 개미떼들이었을까.
그 갈대를 꺾어서 응접실을 치장하고
생각하는 갈대답게 아프리카를 본다.
두 눈을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하는
가죽만 남은 어린 것, 파리떼 엉긴 눈,
사진 설명에만 안타까워 흥분하다
치고 받는 데모, 치고 받는 투전에 흥분하다
판세에 휩쓸리면 몸사리는 우리 갈대.
어차피 세상의 갈대밭은 불타고 말지,
땅이 타는 아프리카 불기에는
생각 없는 갈대가 무더기로 타 죽고
우리 땅의 불에는 언제 누가 타서 뒹굴까.

---1985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 <앵무새의 혀>에 실린 마종기님의 시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하지만, 
한없이 비루할 수도 있는게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도 눈 부릅뜨고 '생각'을 붙잡고 살자.

오늘 어지러운 책장을 정리하다 김 현의 머리글이 눈에 띄어 다시 읽어보다 한 편 올립니다.

이 시집은 작고한 평론가 김 현이 시를 뽑아 편집을 한 것이다. 
문학과 지성사 창사 1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이다.

 ...이 시집은...
어려운 시대에 문학을 한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서로 알게 된 사람들이, 
흥부네 집 단간방에 모여 있는 아이들처럼, 
지나치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이나 아닌지 자문하는 순간, 
추울 때에는 많이 모여 입김으로라도 추위를 막아야 한다는 삶의 지혜가 머리를 스친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실린 시들은 모두 추위를 이겨내려는 입김이다. 
그 입김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이 다소나마 녹을 수 있을까? 
우리는 따뜻한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다...  <책 머리에 김 현 쓰다.>

무려 24명의 시인들의 시가 서너 편씩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너무 많은 가 싶은 변명을 이렇게 '흥부네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문학평론하면 늘 딱딱하고 근엄한 이미지를 주는 게 태반이던 그때,
김 현의 평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 작품 같아서 자주 미소를 짓게 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그의 글을 대할 수 없어서 더욱 한 자 한 자가 애틋하게 느껴진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모처럼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 봅니다.
처음 이 시를 본 날, 너무나 마음이 아릿해서 읽고 또 읽어 외워버렸던 시!

이 시는 그 마지막 연을 다 소리 읽어도 
여전히 그 마음이 떠나지 않고 가슴에서 울림이 남는다.

나도 모르게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먼 풍경화 같은 이 시가 아프게 다가오는 시월...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9. 10. 21:30

그리운 모국어의 속살

" 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이다. 
   그리고 시는 그 문학적 아름다움의 가장 윗자리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도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 문학!
그 문학에 자신의 전부를 바쳐가며 모국어의 속살을 아름답게 드러낸 50인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풍경을 
작가 나름의 필치로 적어나간 고종석의 <모국어의 속살>이란 책을 읽다!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법학을 전공한 기자 출신의 작가가 시인들을 한 명 한 명씩 살펴 보며 스케치한 풍경들인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펼치는 시론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했다.

그 중에 김영승 시인의 「반성」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반성 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는
나를 놓아 주신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입은 그 풍뎅이가 
곧, 이제 만신창이가 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대한 자신의 모습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를 불쌍히 여겨 놓아줄 이는...

이 시는 1987년에 출판되었다.
'나'는 바로,
그 80년대를 살아내야만 했던 그 시대의 상처입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8. 26. 13:15

세상에서 가장 가슴 에리는 일!!!

시인 황지우의 <나는 너다>라는 시집에 있는 시 하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족>
오랫만에 황지우님의 시를 대하니 뜨거운 마음이 울컥 합니다.
요즘 같이 각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서는 이런 감정은 느끼기 힘들 것 같다.

전화 연락도 안 되고,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던 때.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모든 사람, 모든 소리들이 온통 그 사람일 것만 같아 
온 촉각이 곤두서 있는 마음...
 
그런 초조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8. 10. 22:32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

   
            푸른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님의 시

         
시인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져 가슴이 덩달아 뻐근해집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무언가를 향한 마음을 접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놓아지지 않는 마음,

애써 눌렀던 자신의 꿈이
끝없이 되살아나
결국 자신의 길에 들어선 어떤 마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 너무나 인간적인 고뇌를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더 눈물나는 인간!

그래도 오늘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축복을 보내고 싶습니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2. 22:58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유고 시집

1926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을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1969년 6월 부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5년만인 1994년 완성하다. 
시집으로는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별세, 통영시 신전리 미륵산 기슭에 안장되다.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이 책에는 39 편의 시가 실려 있다.
시에는 산골에서 칩거해 사는 이의 외로움과 소박한 삶, 매일의 노동이 묻어나는 흙냄새가 절절이 배어 있다.
자신의 출생, 어머니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다는 것'이란 이 시에서 마지막 연이 참 눈물겹다.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지금 놓여 있는 나의 삶이 너무 힘겨웁다고 느낄 때는 그저 진저리만 치게 된다. 또 그 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어느 날 나도 나이 들어 힘든 시절을 되돌아 보며 '그래도 그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라고 회상하게 될까?
젊은 날에는 당연히 안 보이는 것인가?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이른 봄/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무섭기도 했지만/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나를 지탱해 주었고/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모진 세월가고/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날의 그 집'이란 시다.
작가의 서릿발같은 삶이 느껴지는 시다. 차가운 밤에 홀로 책상에 앉아 원고지를 메워 나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홀로 앉아 그 긴장감을 내내 견지하며 살아온 삶! 결코 녹녹할 수 없는 삶이다. 그래서 모진 세월가고...이제 늙어서 편안하다고 한 것일까?

 내게 있어 '박경리' 하면, 몇 가지 장면이 연상된다.
학창 시절 '김약국의 딸들'에 빠져 들던 내 모습과 '토지'가 드라마 되었을 때 주인공 서희의 꼿꼿한 모습.  그리고 간혹 잡지에 인터뷰 기사라도 실리면 항상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 작가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참 자연스러워서 당당하게 느껴졌고, 오만한 서희의 모습도 연상되었다. 

이제 또 한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들 각자는 누구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게 될까?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5. 26. 23:40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옹이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하지 않을 것이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고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by  류시화

                                                                    



 류시화 님이 엮은 책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실린 글입니다.

모국에서 들려 오는 소식이 어지러운 요즘입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때로는 소탈한 웃음으로 상식을 깨뜨리던 님의 모습!
많은 이들에게 꽃으로 기억되길 기원하며...

오늘부터는 여기 뉴욕 영사관에서도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빈소가 마련되어 조문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삼가 영전에 머리 숙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5. 12. 06:42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중에서

  누구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했지만, 누구는 사람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빗물이 새어들듯이 외로움을 울컥 느끼게 되는 때가 있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고 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4. 10. 23:35

따뜻한 봄볕이 그리운 날에

  어제는 그렇게 날씨가 화창하더니만,
오늘은 ㅉㅉㅉ...

따뜻한 봄볕이 그리운 날에 올립니다.


          봄은 고양이로다

                                          이 장 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불길이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 영 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