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5. 1. 17. 07:14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 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띄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반가운 책 하나 소개해 드립니다.

박두진의 시에 변종하 그림으로 구성된 시화집입니다.

1981년에 나온 책으로 고인이 되신 변종화 화백님의 동양화 같은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서,

 새해 벽두에 감상하기에 딱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을미년 양띠해를 맞이하여 새해 인사드립니다.

'해야 솟아라!'

다시 한번 힘을 모두어 지난 해의 어둠을 물리치고, 올해는 더욱 밝고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빌어봅니다.

늘 건강하시고...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4. 7. 16. 22:30

시 읽는 CEO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을 받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으므로.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인생에선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 배워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거기엔 늘 양면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놓고 떠나야 함을.

더 못 가겠다고 포기한 뒤에도 훨씬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낼 줄 모르는 이가 있다는 것을.

내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남을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정이 계속되듯 사랑 또한 그렇다는 것을.


가끔은 절친한 친구도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그래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남에게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해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이 다툰다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며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또 나는 배웠다. 때론 남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이 한 사물을 보더라도 관점은 다르다는 것을.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 앞선다는 것을.

친구가 도와달라고 소리칠 때 없던 힘이 솟는 것처럼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글 쓰는 일이 대화하는 것처럼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가장 아끼는 사람이 너무 빨리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과

제 주장을 분명히 하는 것을 구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 받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 '20편의 시에서 배우는 자기창조의 지혜'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생에서 도움이 될 만한 시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해설과 함께 사진 자료를 함께 구성하여 마음과 눈을 동시에 즐겁게 한다.

이 시가 특히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 있어서 한번 올려본다. 오늘 다시 보니 그땐 보이지 않던 구절이 또 보인다. ^^




감각적인 로맨틱 코미디와 히치콕 스릴러의 환상적인 결합!

기욤 뮈소의 번째 소설 <내일> 평하는 말이다.

 

작가는 소설의 착상을 웹사이트가 어떤 방식으로 네티즌들을 위해 미래로 메시지를 보내줄지 취재한 기사에서 얻었다고 한다.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하버드 대학의 철학 교수 매튜와 뉴욕에서 나가는 레스토랑의 와인감정사인 엠마.

우연히 야드 세일에서  중고 노트북을 매튜는 컴퓨터에 남아 있는 사진을 보내기 위해서 소유주인 엠마에게 메일을 보내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사람은 만나기로 하는데...

하지만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원칙 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하나가 '즐거움을 선사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소재의 독특함과 현실과 환상의 교묘한 배치로 독자들이 이야기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현실 속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계속해서 따라가게 함으로써 책장을 넘기게 하는 성공하고 있다.

또한 소소한 재미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매사추세츠와 뉴욕 맨하탄의 거리 모습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저절로 그곳을 한번쯤 가보고 싶게 만든다.  

 

작가의 번째 원칙은 ' 마음에 닿는, 내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주제' 소설에서 다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 <내일> 주제는 '밖으로 드러나는 커플의 모습과 속내가 얼마나 다른가'하는 것이다.

평생의 운명의 사랑이라고 믿었던 아내 케이트의 죽음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들...

그로인해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고통 속에 빠지게 되는 매튜!

대학교에서 매튜가 했던 철학 강의의 주제가 "정신의 고통을 몰아내주지 못한다면 철학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였는데,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게 될까?  ^^

 

이번 책은  읽기 시작하자마자, 계속되는 반전과 반전을 쫓다 하루만에 숨가쁘게  끝냈는데,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속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게 되는 작품이다.

 


이 책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던 작품인 <인생>, 

그리고 1996년에 출간한 <허삼관 매혈기>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잡은 

위화의 신작이다.



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창세기


작가는 이 책의 첫페이지가 시작되기 전 창세기에 나오는 이 말을 인용해 놓았고,

같은 구조로 이 책은 주인공이 죽은 뒤의 7일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을 때, 

나는 셋집을 나와 공허하고도 모호한 도시를 휘적휘적 걸어갔다. 

목적지는 빈의관, 사실 이건 오늘날의 명칭이고 예전 명칭으로 하면 화장터였다.

나는 아홉 시 전까지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의 화장 예약 시간이 오전 아홉 시 반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


이 책의 첫 시작 부분이다.

죽은 자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 그의 과거 인연을 따라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찾아간 빈의관에서 화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곳의 풍경은 현실과 다르지 않고...


귀빈구역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큰소리로 수의와 유골함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 가를 말하고,

일반구역에 있는 사람들은 무대 밑의 오케스트라 박스에 흘러나오는 반주같은 대화로 누구 것이 싸고 좋은가를 말했다.<책 속에서>


그리고,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아내, 리칭과의 해후와 헤어짐!

달리는 기차의 좁은 변소 안에서 태어난 '나'를

선로전환공이었던 21세의 총각인 진뱌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키워졌지만,

20년 만에 다시 만난 진짜 가족과의 생활을 위해 떠나가던 순간의 기억!


내가 올라탄 기차가 역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곳에 선 채 멀어지는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플랫폼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아버지 혼자만 거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내 삶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후,

나는 그 여름날 아침 플랫폼의 광경을 가슴 시리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갑자기 아버지 삶으로 뛰어든 나는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장악해 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행복은 아버지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며 나를 길러낸 그 아버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랫폼에 내버린 것이다. <책 속에서>


이 7일 간의 여정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살아있는 동안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죽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고,

그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고 위로 받기도 한다.

만약에 '죽음'으로 우리의 삶이 그대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며칠 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제일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책장이 빨리 넘어 가는게 아쉬웠다.

그래서 7일 간에 걸쳐서 하루에 한 장씩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든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독특했지만, 

잔잔하게 독백하듯이 쓰여진 문장들이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게 하였다. 


"마지막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온통 리칭이라는 여자의 자살에 쏠려 있었다.

 내 아내였던 여자, 내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나의 슬픔은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하차하고 말았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슬렁거렸다.

눈은 환하고 비는 어두컴컴해 아침과 저녁을 동시에 걷는 느낌이었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4. 3. 7. 11:38

일어난 일은 언제나 잘된 일이다!


 

사실 책의 부제는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이다.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거나, 젊어지려고 애쓸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예순을 넘기고 일흔 문턱을 넘어서야 이런 말이 절실하게 닿을까?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난 지금나는 일어난 일은 언제나 잘된 일이다라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닿는다.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돌아보면 힘든 때가 어찌 한두번일까?

프로스트의 가보지 못한 처럼  어느 길을 선택할 지라도 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은 남을 것이다.

이미 걸어온 길을 돌아보건데, 자신이 걸어 왔던길에 대하여  한탄하거나  아쉬움을 가지기 보다는 

내게 이미 일어난 모두 잘된일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 선택할 길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어떨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함으로써 일어나게 일에 대한 염려와 불안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 보다는,  

앞으로 내가 걸어가게 , 내게 일어날 모든 일은 잘될 일이다 라고 생각하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흥미로울까?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망설임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다.

어서 새로운 길로 뛰어 들고 싶어서 몸살이 지경일 것이다.   I Can’t Wait!

 

마치 영원히 것처럼 오늘을 허투루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죽음의 순간은 언제 없기 때문에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하고

마음을 잃지 않아야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있습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과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갈 그것이 바로 좋은 인생입니다

오늘의 삶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행복한 인생이지요.”   < 속에서>

 

 


평소 하루키의 책이 너무나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이 책에서 그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 ^^

 

철도 회사에서 근무하는 남자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함께 등장하는 친구들의 이름은 모두 색채를 가진 이름(아카-적색, 아오-청색, 시로-희색, 구로-검은색)인데, 비해 주인공인 쓰쿠루는 이름 속에 색깔이 없다. 남자 셋, 여자 둘인 이들 다섯 명은 봉사활동 모임을 통하여 고등학교 시절 내내 친하게 지낸 사이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갑자기 친구들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하고  거부당하게 된다.

 

대학교 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1월에 걸쳐 다자키 쓰쿠루(多崎つくる)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스무 생일을 맞이했지만 기념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날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걸음을 내딛지 못했는지, 지금도 그는 이유를 모른다. 그때라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지방을 넘어서는 따위 날달걀 하나 들이켜는 것보다 간단했는데.   <책 속에서>

 

과거의 상실을 덮어 두고 묵묵히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 , 처음으로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연상의 여행사 직원 기모토 사라는 고등학교 시절, 다자키 쓰쿠루가 속한 완벽한 공동체와 결말에 대해 듣고 불현듯 잃어버린 찾기 위한 순례의 여정을 제안하는데.

이 책은 등장인물들의 이름 속에 많은 메타포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이름마다 쓰인 색깔의 의미는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름 속에 자기만 색채가 없는 것에 대하여 항상 씁쓰레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  쓰쿠루의 이름은  나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물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쓰쿠루(나사)이다. 색깔이 없는 쓰쿠루는 개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더 친구들의 개성을 품어 주고 매개체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떠올라서 책상 앞에 앉아 이 소설의 맨 처음 몇 행을 쓰고는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인물이 나올지, 어느 정도 길어질지 아무것도 모른 채 반 년 가깝게 이 이야기를 묵묵히 써 왔습니다.

처음에 제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다자키 쓰쿠루라는 한 청년의 눈에 비친 한정된 세계의 모습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매일 조금씩 변모하여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간다는 것은 제게 굉장히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기도 햇습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편안한 마음으로 다자키 쓰쿠루와 함께 그가  순례를 떠나서 무엇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인생의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가는지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3. 12. 18. 05:02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세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2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 내리고 있었다.


100세 생일날 슬리퍼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탈출한 노인 알란.  

이렇게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실천에 옮기는 엉뚱발랄하기까지한 우리의 영감님!


갱단에 속한 녀석의 돈가방을 훔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고 계속 쫓기게 되는데...

... 노인은 자기가 왜 트렁크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냥 기회가 왔기 때문에? 아니면 주인이 불한당 같은 녀석이라서? 아니면 트렁크 안에 신발 한 켤레와 심지어 모자까지 하나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100세 생일날 충동적으로 양로원을 탈출한 주인공이  갱단과 경찰들에게 쫓겨 다니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해프닝,

그리고 100 년(1905년 출생 -2005년 현재)을 살아오는 동안 알란이 겪게 되는 사건을 교차하면서 현대사의 여러 모습과 과거 알란의 순탄치만은 삶을 교차해서 보여 주고 있다.

너무나 허술하고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한 백 세 노인 알란의 뒤를 쫓으면서 한편으론 웃기도 하지만,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 여정과 현대사의 이면이 겹쳐 보이면서 씁스레한 여운을 주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인 요나스 요나손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의 구성을 위한 치밀함과 유머가 돋보인다.

긴긴 겨울밤, 편안하고 유쾌하게 알란의 삶을 따라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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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만리



최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조정래답다(?)라는 것이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는 중국에 대한 본인의 지식과 식견을 모조리 전달할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의 사건전개에 대한 흥미보다는 중국사회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 미국에 살다보니 한다리 건너 보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독자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수준을 작가는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이건 계몽소설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드는 이유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한국의 20대 또는 30대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그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앞서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비교적 술술 잘 읽혀진다. 왜냐하면 <태백산맥>이나 <한강>처럼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얘기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상대를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이므로, 읽으면서 느끼는 심적 갈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네이버에 연재된 소설이었으니, 젊은 독자층을 상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갈 수밖에 없었음도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쉽게 읽혀진다고 해서 절대로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은 한 수 아래로 내려보고 있는 중국의 성장 속도와 그 잠재력은 정밀 대단하다.  중국이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나라가 아니다. 조만간 현재의 G2에서 G1의 자리를 꿰찰 나라이니 우리도 적절한 대응방도를 찾아야 한다.    


작가가 2년동안 현지답사를 하고, 수많은 취재를 통하여 수집한 정보들은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다. 베이징과 샹하이 그리고 시안, 난징까지 발로 뛴 흔적을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대책이 있다." (上有政策 下有對策) 라는 재미난 표현과 '중국의 여자들은 미인이 되기보다 부자가 되기를 더 바란다' 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베이징과 샹하이 등 동부지역의 급속한 성장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쓰촨지역 등 서부지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으로, 동부지역에 유입된 인력들중 자기네들의 고향인 서부로 이동하는 인력이 증가함에 따라 인력난이 가중된다는 분석도 흥미로왔다.       



중국 특유의 칸시란 한자로 관계(關係)라고 썼고, 그 뜻은 ‘연줄ㆍ뒷배ㆍ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ㆍ지연ㆍ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칸시 때문에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한동안 정글을 헤매며 허방을 딛고, 넘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전대광은 요행히 샹신원과 칸시가 맺어져 있었다. 그래서 샹신원은 자기 사촌의 일을 은밀하게 전대광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철저하게 비밀 보장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전대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부장으로 승진한 것도 샹신원의 덕이 컸다. 샹신원은 전대광네 회사의 수출입 업무를 언제나 수월하게 풀어주었고, 그 덕은 전대광의 빠른 승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 책속에서>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계몽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작가가 오랫동안 현지답사와 취재를 통하여 전달할려고 하는 알찬 내용은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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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책제목이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고등어를 금하다니?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야기인가? 건강관련 도서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40여년전에 독일로 이주해서 독일인 남편과 1 1녀를 두고 살고 있는 저자(임혜지)의 생활에세이이다.

에세이이긴하지만 그 내용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그들만의 행복의 가치와 척도를 가지고 있는 뮌헨의 부부 이야기.

 

저자 임혜지는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40여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독일인 남편도 공학박사출신이니 학벌이나 시회적인 지위가 남에게 밀리는 이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생활한다. 그러고 보니 책표지에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제적인 여유때문에 차를 못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고려해서 자전거를 탄단다.

뭐 세상에 그런 별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에 따라서 일상의 불편함을 그렇게 감내하는 것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러 이러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말하지만, 다들 그런 세상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내 가족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며,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찾아내면 바로 행동에 들어간다. 돈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기를 펑펑 쓰기보다는 따뜻한 물주머니를, 먼 나라에서 온 고등어보다는 내 나라의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사소하지만 소신껏, 자신의 가치를 실천하는 용감한 그녀 가족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홀로 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가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내가 거기에 맞췄다. 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학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인생에 유익한 일이지, 그 나이에 남보다 조금 더 먼저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이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로, 다른 이들의 성취를 평가절하하거나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일들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자기자신에게 세속적인 성공이나 안락함이 보장되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 보인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슨 수도승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남편이 회사에서 일주일에 36시간 근무를 40시간으로 늘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하루에 30분 더 일한다고 사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맘대로 해.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우린 지금 버는 돈도 다 못 쓰는데. 
“집에 일찍 와봤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걸.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건 안 중요해? 
신문이나 읽고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남편은 일을 더 하지 않았다(몇 달 후에 회사에선 남편을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야 하는 위치로 승격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책임감과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 책속에서>

 

흐음. 그녀는 자기네들이 버는 돈도 다 못쓴단다. 책의 문맥상 파악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경제사정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 같지는 않다그러니 '적게 벌고, 적게 쓰자' 이런 주의인데... 어떻게 적게 쓰면서도 궁핍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게 정녕 궁금하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그것을 일상의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 정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식탁의 고등어를 볼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그렇다고 나까지 고등어를 금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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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3. 3. 28. 01:40

변신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인 하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다.

주인공 준이치는 소심한 성격의 회사원이다. 그가 어느날 우연하게 총기사고를 당하고 장기이식 수술을 받게된다.

그런데 그 장기라는 것이 바로 '뇌'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뇌이식 수술을 받은 것인데, 전체 뇌를 이식 받은 것은 아니고, 일부분만 이식을 받는다.

일부분이긴 하지만 새로 이식된 뇌가 준이치의 의식과 사고체계에 조금씩 영향을 미쳐가는 과정을 스릴러적인 방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기야 요즘은 심장도 이식수술이 가능할 뿐아니라, 인공심장도 상용화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제 사람의 장기중에서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만한 '뇌'를 그 소재로 다룬 것은 어찌보면 너무 일본적(?)이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혀진다.

 

"당신은 몰라. 뇌가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역시 특별해. 당신이 어떻게 알겠어?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일 눈을 떴을 때, 거기에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야. 
아득한 과거의 기억은 전부 다른 사람 것에 불과해. 
난 지금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어.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것이 철저하게 無로 돌아가고 있어. 

< 책속에서 >

 
이야기의 스토리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스포일러성이라 자제하고 싶다.

요즘은 성형시대이다. 단순한 얼굴성형이 아니라 양악수술이다 뭐다해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마음도 성형받고 싶어질 터인데, 그때쯤이면 뇌이식 수술도 일반화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의 존재가치(Identity)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나?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는데, 그 생각의 주체가 섞이거나, 바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기야 태어날 때부터 멀쩡하게 가진 뇌를 가진 우리도 어떨 때는 자신의 생각이 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바뀌는 것이라고 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사고가 성숙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마음이 변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기본 성정이니, 남의 뇌를 이식받아서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자신이 변해가는것인지... 


어쨌든 이 소설에서는 뇌의 물리적 구조가 변경됨으로 인한 사고방식의 변화를 얘기한다. 그러고 보면 성형시술을 받아서 얼굴이나 몸매가 예쁘지면, 이전에는 없던 자신감이 솟아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뇌자체가 바뀌는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작가는 주인공이 아무리 존재감이 없이 살아왔다고 해도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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