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던 작품인 <인생>, 

그리고 1996년에 출간한 <허삼관 매혈기>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잡은 

위화의 신작이다.



느님께서는 

엿샛날까지 하시던 일을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 

-창세기


작가는 이 책의 첫페이지가 시작되기 전 창세기에 나오는 이 말을 인용해 놓았고,

같은 구조로 이 책은 주인공이 죽은 뒤의 7일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을 때, 

나는 셋집을 나와 공허하고도 모호한 도시를 휘적휘적 걸어갔다. 

목적지는 빈의관, 사실 이건 오늘날의 명칭이고 예전 명칭으로 하면 화장터였다.

나는 아홉 시 전까지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나의 화장 예약 시간이 오전 아홉 시 반이라고 했다. <책 속에서>


이 책의 첫 시작 부분이다.

죽은 자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 그의 과거 인연을 따라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찾아간 빈의관에서 화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곳의 풍경은 현실과 다르지 않고...


귀빈구역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큰소리로 수의와 유골함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 가를 말하고,

일반구역에 있는 사람들은 무대 밑의 오케스트라 박스에 흘러나오는 반주같은 대화로 누구 것이 싸고 좋은가를 말했다.<책 속에서>


그리고, 사랑했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아내, 리칭과의 해후와 헤어짐!

달리는 기차의 좁은 변소 안에서 태어난 '나'를

선로전환공이었던 21세의 총각인 진뱌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키워졌지만,

20년 만에 다시 만난 진짜 가족과의 생활을 위해 떠나가던 순간의 기억!


내가 올라탄 기차가 역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곳에 선 채 멀어지는 기차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플랫폼은 오가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아버지 혼자만 거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버지가 내 삶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후,

나는 그 여름날 아침 플랫폼의 광경을 가슴 시리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가 스물한 살 때 갑자기 아버지 삶으로 뛰어든 나는 아버지의 삶을 송두리째 장악해 버렸다. 

그래서 아버지가 마땅히 누려야 했던 행복은 아버지 삶에 비집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온갖 고생을 참고 견디며 나를 길러낸 그 아버지를 나는 나도 모르게 플랫폼에 내버린 것이다. <책 속에서>


이 7일 간의 여정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살아있는 동안에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죽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고,

그 때문에 후회하기도 하고 위로 받기도 한다.

만약에 '죽음'으로 우리의 삶이 그대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며칠 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제일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책장이 빨리 넘어 가는게 아쉬웠다.

그래서 7일 간에 걸쳐서 하루에 한 장씩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든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독특했지만, 

잔잔하게 독백하듯이 쓰여진 문장들이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게 하였다. 


"마지막 순간, 나의 몸과 마음은 온통 리칭이라는 여자의 자살에 쏠려 있었다.

 내 아내였던 여자, 내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나의 슬픔은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도착해 하차하고 말았다."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슬렁거렸다.

눈은 환하고 비는 어두컴컴해 아침과 저녁을 동시에 걷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