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13. 4. 27. 11:41

봄밤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시인 김수영의 1957년도 작품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 하나 들어 김수영의 시를 읽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읽게 되는 시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봄! 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시인의 시를 읽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12. 3. 8. 00:57

늘 그리운 당신 ...


우리는

우리는 서로 없는 것 같지만
서로 꽉 차게 살아
어쩌다 당신 모습 보이지 않으면
내 눈길은 여기저기
당신 모습 찾아 헤매입니다.
강 건너 우리 밭과 감잎 사이
텃밭 옥수수잎 사이에
어른어른 호박꽃만 피어나도
내 가슴은 뛰고
바람에 꽃잎같이 설레입니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얼굴 맞대고 살아도
당신이 보고 싶고
밤이면 밤마다 살 맞대고 잠들어도
이따금 손 더듬어 당신 손 찾아
내 가슴에 얹고
나는 안심하며 잠듭니다.

내 곁에 늘 꽃 피는 당신
내 마음은 당신한테 머물러 쉬며
한 세월이 갑니다.

                                                        - 김용택 시집「 꽃산 가는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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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감을 두려워한다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 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  류시화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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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12. 21. 09:27

눈이 온 아침



눈이 온 아침은
앞산이 갑자기
가까워 보였다.

허옇게
눈이 쌓인 등성이가
코 앞에 다가서고,

논두렁 응달마다
댓잎처럼 파랗게 빛나는
꿩 발자국.

그런 아침엘수록
아침 일찍 친구를
부르러 갔다.

눈이 하얗게 쌓인
사립문 앞에서
장수야
덕수야,
학교 가아자.
큰 소리로 친구를 부르면,

대답 대신 삽살개가 컹컹 짖고,
감나무 가지에 쌓인 눈이 
와르르 무너졌다.

----영종 박목월의 <눈이 온 아침>



오늘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지붕 위에도 나뭇가지 위에도 전기줄 위에도 온통 무겁게 내려 앉은 
눈! 눈! 눈!
바람이라도 설핏 불면 또 눈이 날리고...

어린 시절 눈 내린 아침이면 
공연히 일찍 집을 나서선 친구를 부르고...
웬지 들뜨는 마음을 주체  못하곤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곳만 골라 발디디곤 하던 그 마음!

그 때의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날,
이역만리 먼 곳에서 고향 하늘을 그리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모처럼 황동규님의 <즐거운 편지>를 소리 내어 읽어 봅니다.
처음 이 시를 본 날, 너무나 마음이 아릿해서 읽고 또 읽어 외워버렸던 시!

이 시는 그 마지막 연을 다 소리 읽어도 
여전히 그 마음이 떠나지 않고 가슴에서 울림이 남는다.

나도 모르게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먼 풍경화 같은 이 시가 아프게 다가오는 시월...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9. 10. 21:30

그리운 모국어의 속살

" 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이다. 
   그리고 시는 그 문학적 아름다움의 가장 윗자리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도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 문학!
그 문학에 자신의 전부를 바쳐가며 모국어의 속살을 아름답게 드러낸 50인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풍경을 
작가 나름의 필치로 적어나간 고종석의 <모국어의 속살>이란 책을 읽다!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법학을 전공한 기자 출신의 작가가 시인들을 한 명 한 명씩 살펴 보며 스케치한 풍경들인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펼치는 시론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했다.

그 중에 김영승 시인의 「반성」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반성 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는
나를 놓아 주신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입은 그 풍뎅이가 
곧, 이제 만신창이가 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대한 자신의 모습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를 불쌍히 여겨 놓아줄 이는...

이 시는 1987년에 출판되었다.
'나'는 바로,
그 80년대를 살아내야만 했던 그 시대의 상처입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8. 26. 13:15

세상에서 가장 가슴 에리는 일!!!

시인 황지우의 <나는 너다>라는 시집에 있는 시 하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족>
오랫만에 황지우님의 시를 대하니 뜨거운 마음이 울컥 합니다.
요즘 같이 각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에서는 이런 감정은 느끼기 힘들 것 같다.

전화 연락도 안 되고,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던 때.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모든 사람, 모든 소리들이 온통 그 사람일 것만 같아 
온 촉각이 곤두서 있는 마음...
 
그런 초조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이 또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8. 10. 22:32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

   
            푸른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님의 시

         
시인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져 가슴이 덩달아 뻐근해집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무언가를 향한 마음을 접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끝내 놓아지지 않는 마음,

애써 눌렀던 자신의 꿈이
끝없이 되살아나
결국 자신의 길에 들어선 어떤 마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이 너무나 인간적인 고뇌를 벗어날 수 없는...
그래서,
더 눈물나는 인간!

그래도 오늘은,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게 축복을 보내고 싶습니다.
                           
요즘 여기는 너무 자주 폭우가 쏟아져요.
전기도 가끔 깜빡거리기도 하고, 컴퓨터도 한번씩 다운 되기도 하니...
가끔 제가 벽지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벌써 8월입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가 4월 1일이었는데, 어느새 8월이라니...

즐거운 독서가 조금씩 버거운(?) 독서로 바뀌고 있는 중입니다. ^^
좋은 책들을 찾아서 빨리 읽고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은 가득한데...
능력이 많이 못 미쳐서 죄송...  ㅠ.ㅠ

오늘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마음이 들떠서 한장 한장 넘어가는 페이지가 아쉽기만 합니다.
맛있는 것은 되도록이면 조금씩 천천히 먹고 싶은 마음에...

아!
읽다가 마음에 걸려서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시 하나 올립니다.

지금은 비록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우르릉 쾅쾅 울리고 있지만, 
곧  이런 기쁨을 누릴 순간이 오겠죠?

폭우가 지난 뒤의 꽃

우애 있게, 모두 한쪽으로
바람에 몸을 숙이고, 물방울을 떨구고 섰다.
두려움에 위축된, 비바람에 눈이 먼
여린 것은 꺾여 쓰러져 있다.

아직 멍한 채로 주저하며 서서히
꽃들은 다시 그리운 햇빛 속으로 고개를 쳐든다.
우애 있게, 최초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적이 우리를 삼키지는 않았다.

이 광경을 보자 나는 기억이 난다.
어두운 삶의 충동 속에서 보낸 숱한 시간들이.
어둠과 궁핍에서 벗어나 자신을 추스르고
감사와 사랑으로, 온화한 빛을 향하던 때가.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5. 26. 23:40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옹이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하지 않을 것이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고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by  류시화

                                                                    



 류시화 님이 엮은 책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 실린 글입니다.

모국에서 들려 오는 소식이 어지러운 요즘입니다.
뜨거운 열정으로, 때로는 소탈한 웃음으로 상식을 깨뜨리던 님의 모습!
많은 이들에게 꽃으로 기억되길 기원하며...

오늘부터는 여기 뉴욕 영사관에서도 노무현 전대통령님의 빈소가 마련되어 조문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삼가 영전에 머리 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