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6. 10. 23:33

최인호의 머저리 클럽

나는 남의 집에 가면 책꽂이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많이 궁금해 하는 편이다.
그러다 내가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취향의 책을 발견하곤, 뜻밖의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이 책도 그랬다.
요즘 최인호 작가는 상당히 역사(가야, 고구려 이야기)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머저리 클럽이라는 고교 시절을 회상하는 글이라니 좀 의외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최인호하면 '별들의 고향', '고래 사냥'을 떠올리게 되고, '경아'라는 여자 아이 이름을 부르던 느끼한(^^) 배우의 목소리를 그리고 대학 시절에 번화한 시내에 나가면 꼭 있던 '별들의 고향'이라는 이름의 주점들...그런 것들이 먼저 연상된다.

머저리! 스스로를 머저리들의 모임이라고 부르면서도 꿀리지 않으려면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은 1970년대를 고교 시절로 보내는 보내는 여섯 악동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나'(동순)가 고1에 올라가 다른 중학교에서 전학 온 영민이라는 아이와 중학교 동창인 5명의 아이들과 함께 머저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패거리를 만들면서 함께  겪는 각자의 성장기랄 수 있다.

나름(?) 건전하게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 다섯 명과는 좀 다른 녀석이 바로 영민이였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주제에 조금도 기가 죽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 5분 씩 늦는 것은 예사고, 도시락도 1교시가 마치자마자 바로 까먹기도 하고...그래서 다섯 명의 친구들이 합세하여 영민에게 시비를 걸게 되고, 덩치가 작아 매일같이 동순 패거리에게 얻어 맞으면서도 끝까지 싸움을 붙는 영민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그러다  친해지게 된다.
조금 웃자란 영민의 합류로 머저리 클럽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고...

오랫만에 향수에 젖어서 글을 읽었다. 교복을 항상 입고 다녀야 했고, 까까머리를 숨기기 위해서 남학생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어른인 척하고...모표가 잘 안 보이도록 모자를 있는대로 구겨다니는 치도 있었고...여학생에게 말 한번 걸려고 자기가 타지도 않는 버스를 괜히 볼일이 있는 것처럼 타고는 말도 못 붙이고 내리기도 하고...그런 때가 있었지하며.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에게도 학창 시절은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눈 내리는 날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고 낙엽 흩날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슬픔에 잠겼던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성스러운 시간이 일 초 일 초 흘러가고 있음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서문에서

까까머리 교복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절을 즐겁게 돌아 보게 될 것 같다.
"친구야! 잘 있었나?"  전화라도 한 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