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3. 12. 18. 05:02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그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려 남자답게 그 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알란 칼손은 행동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 다시 말해 노인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벌써 말름세핑 마을에 위치한 양로원 2층의 자기 방 창문을 열고 아래 화단으로 뛰어 내리고 있었다.


100세 생일날 슬리퍼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탈출한 노인 알란.  

이렇게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실천에 옮기는 엉뚱발랄하기까지한 우리의 영감님!


갱단에 속한 녀석의 돈가방을 훔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고 계속 쫓기게 되는데...

... 노인은 자기가 왜 트렁크를 훔칠 생각을 했을까 자문해 보았다. 그냥 기회가 왔기 때문에? 아니면 주인이 불한당 같은 녀석이라서? 아니면 트렁크 안에 신발 한 켤레와 심지어 모자까지 하나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이 중에서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뭐, 인생이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을 때는 이따금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일이지…… . 그가 좌석에 편안히 자리 잡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100세 생일날 충동적으로 양로원을 탈출한 주인공이  갱단과 경찰들에게 쫓겨 다니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해프닝,

그리고 100 년(1905년 출생 -2005년 현재)을 살아오는 동안 알란이 겪게 되는 사건을 교차하면서 현대사의 여러 모습과 과거 알란의 순탄치만은 삶을 교차해서 보여 주고 있다.

너무나 허술하고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이기도 한 백 세 노인 알란의 뒤를 쫓으면서 한편으론 웃기도 하지만,  

순탄치 않은 그의 인생 여정과 현대사의 이면이 겹쳐 보이면서 씁스레한 여운을 주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인 요나스 요나손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의 구성을 위한 치밀함과 유머가 돋보인다.

긴긴 겨울밤, 편안하고 유쾌하게 알란의 삶을 따라가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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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3. 9. 11. 22:50

정글 만리



최근 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각광받고 있는 소설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은 정말 조정래답다(?)라는 것이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는 중국에 대한 본인의 지식과 식견을 모조리 전달할려고 애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의 사건전개에 대한 흥미보다는 중국사회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 미국에 살다보니 한다리 건너 보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 독자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수준을 작가는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이건 계몽소설 아닌가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드는 이유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한국의 20대 또는 30대를 주독자층으로 설정했다고 하는데, 그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너무 앞서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비교적 술술 잘 읽혀진다. 왜냐하면 <태백산맥>이나 <한강>처럼 우리끼리 지지고 볶는 얘기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상대를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이므로, 읽으면서 느끼는 심적 갈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에서 네이버에 연재된 소설이었으니, 젊은 독자층을 상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갈 수밖에 없었음도 쉽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쉽게 읽혀진다고 해서 절대로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아직은 한 수 아래로 내려보고 있는 중국의 성장 속도와 그 잠재력은 정밀 대단하다.  중국이 이미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정도의 나라가 아니다. 조만간 현재의 G2에서 G1의 자리를 꿰찰 나라이니 우리도 적절한 대응방도를 찾아야 한다.    


작가가 2년동안 현지답사를 하고, 수많은 취재를 통하여 수집한 정보들은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다. 베이징과 샹하이 그리고 시안, 난징까지 발로 뛴 흔적을 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정책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대책이 있다." (上有政策 下有對策) 라는 재미난 표현과 '중국의 여자들은 미인이 되기보다 부자가 되기를 더 바란다' 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었다.

베이징과 샹하이 등 동부지역의 급속한 성장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쓰촨지역 등 서부지역을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 정책으로, 동부지역에 유입된 인력들중 자기네들의 고향인 서부로 이동하는 인력이 증가함에 따라 인력난이 가중된다는 분석도 흥미로왔다.       



중국 특유의 칸시란 한자로 관계(關係)라고 썼고, 그 뜻은 ‘연줄ㆍ뒷배ㆍ네트워크’ 등이 뭉뚱그려진 것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건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고, 나라 망치는 학연ㆍ지연ㆍ혈연을 다 합쳐서 이루어지는 그 어떤 것이었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 칸시 때문에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기업들은 한동안 정글을 헤매며 허방을 딛고, 넘어지고,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전대광은 요행히 샹신원과 칸시가 맺어져 있었다. 그래서 샹신원은 자기 사촌의 일을 은밀하게 전대광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철저하게 비밀 보장이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전대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부장으로 승진한 것도 샹신원의 덕이 컸다. 샹신원은 전대광네 회사의 수출입 업무를 언제나 수월하게 풀어주었고, 그 덕은 전대광의 빠른 승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 책속에서>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계몽소설을 읽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작가가 오랫동안 현지답사와 취재를 통하여 전달할려고 하는 알찬 내용은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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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책제목이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고등어를 금하다니?  조선시대 양반들의 이야기인가? 건강관련 도서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40여년전에 독일로 이주해서 독일인 남편과 1 1녀를 두고 살고 있는 저자(임혜지)의 생활에세이이다.

에세이이긴하지만 그 내용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그들만의 행복의 가치와 척도를 가지고 있는 뮌헨의 부부 이야기.

 

저자 임혜지는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40여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다

 

독일인 남편도 공학박사출신이니 학벌이나 시회적인 지위가 남에게 밀리는 이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동차의 나라 독일에서 차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생활한다. 그러고 보니 책표지에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제적인 여유때문에 차를 못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를 고려해서 자전거를 탄단다.

뭐 세상에 그런 별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관에 따라서 일상의 불편함을 그렇게 감내하는 것이 쉬운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이러 이러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말하지만, 다들 그런 세상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내 가족 안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며,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을 찾아내면 바로 행동에 들어간다. 돈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기를 펑펑 쓰기보다는 따뜻한 물주머니를, 먼 나라에서 온 고등어보다는 내 나라의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사소하지만 소신껏, 자신의 가치를 실천하는 용감한 그녀 가족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홀로 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가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내가 거기에 맞췄다. 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학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인생에 유익한 일이지, 그 나이에 남보다 조금 더 먼저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이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로, 다른 이들의 성취를 평가절하하거나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일들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자기자신에게 세속적인 성공이나 안락함이 보장되는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이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가 있어 보인다. 정말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무슨 수도승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남편이 회사에서 일주일에 36시간 근무를 40시간으로 늘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하루에 30분 더 일한다고 사생활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맘대로 해.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우린 지금 버는 돈도 다 못 쓰는데. 
“집에 일찍 와봤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걸.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건 안 중요해? 
신문이나 읽고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남편은 일을 더 하지 않았다(몇 달 후에 회사에선 남편을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야 하는 위치로 승격시켰다. 그것은 또 다른 책임감과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했다).  

< 책속에서>

 

흐음. 그녀는 자기네들이 버는 돈도 다 못쓴단다. 책의 문맥상 파악되는 것이지만, 그들의 경제사정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 같지는 않다그러니 '적게 벌고, 적게 쓰자' 이런 주의인데... 어떻게 적게 쓰면서도 궁핍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게 정녕 궁금하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 그것을 일상의 생활에서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 정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식탁의 고등어를 볼 때마다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그렇다고 나까지 고등어를 금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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