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2. 11. 5. 03:50

광해, 왕이 된 남자

 
 
 
솔직히 광해군, 연산군, 영창대군 그리고 인목대비 등등 이런 단어들은 나를 지겹게 만든다.
그 역사속의 인물들을 좋아하거나 싫어 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을 소재로 한 소설,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수도 없이 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찬란한 역사가 반만년이나 되는 대한민국의 장구한 역사에 그리도 역사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가 빈곤한 것인가?
물론 최근 들어서는 고구려나 삼국시대 이전을 소재로 한 드리마가 많이 등장하기는 하였지만. 
 
어쨌거나 '광해군' 이런 제목의 소설이나 영화는 나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하였다.
근데 이 소설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천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하고 있으며, 미국 각지에서도 영화가 상영된다고 하길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책을 잡게 되었다.
 
이야기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림들의 권력 다툼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혼란이 극에 달했던 광해군 8년, 서인과 소북 세력의 견제와 독살 위협에 점점 난폭해져 가던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과 똑같이 닮은 자를 찾아오라는 밀명을 내린다.
기방에서 광대놀음으로 돈을 벌던 ‘하선’을 찾아낸 허균은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놀랍도록 닮은 하선을 왕에게 데려간다.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동안 왕의 대역을 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설로 구성한 것이다.
 
설정자체가 그러니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고, 모티브나 등장인물들을 차용한 팩션이다.
물론 소설속의 대동법이라든지 호패법 그리고 당파싸움 등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소설읽기를 마치고 나서도 왜 이 소설/영화가 천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이유를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내용이 감동적이거나 재미있었다기보다는 이 소설/영화를 받아들이는 한국의 작금의 상황이 내겐 더욱 흥미로웠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는 곧 대선이 있고, 정치지도자들은 무릇 이렇게 하여야 한다는 많은 논의들이 있는 시점이다.
 
사실 정치라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는 것일게다.
한국의 이번 대선에서는 '복지'가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한편에서는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내세운다.
'선택적 복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실시할 예산이 없다고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의 손자까지 정부에서 밥을 먹여야 하느냐고 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는데, 그 손자가 만일 공립학교에 다닌다면 밥좀 먹여줘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둘다 맞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들어가면 또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 자신의 입장차이에 따라 다른 목소리가 나올수 밖에 없다. 또 그것이 정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해보기도 하다가, 안되면 저렇게 또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큰 이야기 틀중의 하나가 '왕이 백성들의 삶은 먼저 생각하지 않고, 왕권유지나 신료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구상에만 골몰하였다.'는 것이데.
만일 왕에게 직접 물어보았다면, 왕은 자신이 건재해야만이 국가안위가 보장되고 더불어 백성들도 편한 삶을 살수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 분명하다. 어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근데 그게 정답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튼 다양화, 다원화 되어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자신이 옳으니 무조건 믿고 따르라라는 지도자보다는. 민초들의 소리에 한번 더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욕구들을 잘 조정해주는 그런 리더쉽을 가진 지도자를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다시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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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2. 9. 12. 06:45

흑산

 

이 소설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와 관련하여 그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과 민초들의 삶을 담고 있다.

내용은 크게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정약종, 유배형을 받은 정약전과  정약용 그리고 그  형제들의 조카 사위인 황사영과 같은 지식인의 삶과 단지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했던 뱃사공, 마부, 주모 등등의 민초들의 삶과 생각들이 크게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흑산도로 유배되어 간 정약전이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 바다는 이 세상 모든 물의 끝이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는데,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에 있다는 흑산도는 믿기지 않았다. 바다는 인간이나 세상의 환란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어 보였다. 밀고 써는 파도가 억겁의 시간을 철썩거렸으나,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스치고 지나간 시간의 자취는 거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바다는 가득 차고 또 비어 있었다.

……저것이 바다로구나, 저 막막한 것이, 저 디딜 수 없는 것이…….

……마음은 본래 빈 것이어서 외물에 반응해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하니, 바다에도 사람의 마음이 포개지는 것인가. "

 

천주학쟁이라는 이유로 심문을 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무안포구에서  유배지인 흑산도행 배를 기다리는 정약전.

세상사의 온갖 아귀다툼과는 전혀 무관한 듯이 철썩거리는 바다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잘 대비되어 나타난다. 

 

정약전하면 흑산도에 유배되어 그곳의 물고기의 생태를 쓴 '자산어보'를 남긴 실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하여 시대의 큰 흐름 속에 휩쓸려 원하지 않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유학자의 허약함과 비루함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을 끈질김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약전은 '흑산'의 '검을 흑'은 너무나 무서우므로, 대신 '검을 자'를 써서 '자산'으로 대신하겠다고 창대에게 말하는데, 이'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라는 뜻 외에도 '지금,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 사는 섬은 곧 자산이다."라고 말한다.

그 의미는 '검을 흑'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깊은 어둠(수렁)이지만,

'검을 자' 속에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빛이 있으니, 그래도 삶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 작가의 '후기' 중에서

 

작가 특유의 인물들의 행동을 표현하는 시니컬한 말투와 함께

이 글을 쓰는 내내 흑산도, 남양 성모성지, 배론성지 같은 사학 죄인들의 유배지나 피 흘린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을 그 분주한 발걸음이 눈에 선하다.

작가의 손으로 되살아나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내는 인간들의 나약함과 치졸함 그리고 또 그 이상으로  어떤 고통도 감내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가슴 졸이기도 하고  한숨짓기도 했던 시간이 새삼 가슴앓이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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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젊은 나이에 세속의 출세가도를 달리다 암으로 일찍 생을 마감한 여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저자 위지안(于娟)은 1979년생으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에 유학한 뒤 돌아와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소문난 독서광이었으며, 지는 것을 싫어해 공부에서든 놀기 또는 먹기에서든 항상 또래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곤 했다.  정부에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던 2009년 10월, 갑작스럽게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겨우 성공의 열매를 맛볼려고 하는 순간에 찾아온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지만, 좌절과 분노를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남겨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깨달은 것들을 일상의 에피소드와 함께 블로그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푸단대학이라는 곳이 세계100대 대학에 들어가는 명문이라고 여러번 언급하지만, 사실 그녀가 재직했던 곳이 그렇게 유명한 대학이든 아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 젊은이가 목표를 세워두고 오로지 그 목표달성만을 위하여 많은 것들을 뒤로 밀어두는 그런 삶을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인생퇴장명령을 받은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은 시간 뿐인데, 저자는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여태껏 무심하게 지나친 많은 일상들이 새롭게 보였고 느껴졌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소회를 일면 감상적이긴 하지만 비교적 담담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적어나갔다.

 

삶의 마지막에 와서야 마치 세상에 처음 나온 것처럼,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 어떤 고통도 모두 지나간다는 인생의 지혜를 전해준다. 더불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즐겁고 유쾌하게 스스로 즐거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뒤, 삶의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하루하루가 마치 인생의 처음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처럼 하나하나,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삶의 끝에 와서야.
지금에야 깨닫게 된 것들을, 암에 걸리기 전에 미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만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랬더라면 내 삶을 더 행복한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뭔가를 잡기 위해서는 아주 먼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

 < 책속에서 >

 

우리는 살기 힘들때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마지못해 사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렇게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한국이 OECD국가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엊그제 안철수씨가 힐링캠프에 출연하여 자살률 1위라는 것은 현재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였는데, 난 생각이 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가진다면 자살이라는 극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사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배가 고픈 것은 참아도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 이런 생활태도나 사고가 그런 극한 선택을 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 책의 저자가 한때 생각하였던 것처럼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이, 당연히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남보다 나은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여태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띄게 된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한 많은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들이.

 

리도 지금 이 책의 제목을 다시 소리내어 되뇌이며 그 답을 찾아볼 일이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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