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1. 2. 17. 04:25

나는 너의 생각을 모두 알고있다

<용은 잠들다>

일본 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이다. 
 


올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와서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고 해서, 뭔가 재밌는 읽을거리가 없나하고 고민하던 차에 누가 권유한 책이다.
  
제목이 조금 구태의연하게 보였던 탓에, 손이 잘가지 않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나름 독특한 설정과 작가의 글솜씨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꽤 두꺼운 분량이었음에도.

30년 만의 거센 폭풍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비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십대 소년 신지를 차에 태운 잡지사 기자 고사카는 우연히 한 초등학생의 실종사건에 휘말린다. 불길하게 열린 맨홀 뚜껑과 그 속으로 세차게 빨려들어가는 물길, 그리고 어린이용 노란 우산을 본 신지는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맨홀 뚜껑을 열어둔 두 명의 남자를 찾으러 가자고 고사카를 재촉한다.

고사카는 맨홀 뚜껑을 연 것이 신지 짓이 아닌가 의심하고, 그런 그에게 신지는 뜻밖에 고백을 한다. 자신은 물건이나 사람에게 남겨진 어떤 기억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자라며, 고사카의 어린 시절의 자동차 사고, 옛 연인의 이름을 맞춘다. 반신반의하면서 신지와 함께 범인을 찾으러 가지만, 물적 증거가 없어 실패한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오다 나오야라는 스무 살 청년이 고사카를 찾아와 신지는 단지 '초능력 놀이'에 빠져있는 십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이 소설의 내용을 더 이상 소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추리소설이므로 후일의 독자들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을 모두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약간은 판타지적인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들이 그러한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사건을 손쉽게 해결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그런 초능력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불편할 수 도 있는지에도 작가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일본 추리작가협회 대상 수상작답게 사건의 전개와 추리과정이 제법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다. 
초능력자가 등장하는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가는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글을 계속 읽어내려가다 보면, 왜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견된다는 서평을 듣고 있는 지 알게 된다.
사건의 전개장면과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를 아주 세밀하게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탓일게다.
하기야 그래야 추리 소설의 구성을 보다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이기도 하다. 

일전에 TV의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의 생각을 다른 사람 모두가 읽을 수 있다는 설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모두 알 수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일삼는 군상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모두 알고 있는 상대방이 그것을 악용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어느쪽이 나을까?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의 선택이 아닐지도 모른다.
둘다 좋지 않을 것 같으므로.
세상의 일이란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때도 있는 것 아닌가?

'용은 잠들다'의 의미는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큰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만 끝내 그 용을 깨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지닌 용의 모습은 모두 다를 것이다.
나의 용의 모습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책읽기를 마치고 난 후의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