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1. 1. 25. 01:32

김매듯이... (박완서 선생님을 추모하며)




돌이켜보니 김매듯이 살아왔다.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후비적후비적 김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 것 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박완서 산문집 <호미>  책 머리글에서-


박완서 선생님의 작고 소식을  들으며,
나는 박경리 선생님을 동시에 떠올렸다.

그리고,
' 이렇게 세월은 처연하게 가고 있구나...
어떤 감정도 실지 않고 흘러가고야 마는구나...' 하는 허망함!

... 칠십 년은 끔찍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그 물소리는 마치 모든 건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본문 중에서>



그분을 떠올리면
늘 소박한 웃음과 평온함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분의 진짜 치열한 삶과 무관하게...

일제 시대 이후 광복과
전쟁기의 고단한 우리 민족의 삶을
마치 할머니가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말하듯이 
가만가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시던
또 한 분이 우리곁을 떠나셨다.

영원한 안식을 축원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