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0. 1. 21. 22:44

<자살 가게> 중에서

                              


소재의 독특함과 표지 그림이 예사롭지 않아 빼든 책!
장 튈레라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다.
이름도 '튈레'라서 더 어울리기도 한... ^^

가문 대대로 자살용품을 판매해서 승승장구해온 이 가문에
'끔찍한 재앙'이 닥쳤으니, 
바로  행복과 웃음 바이러스를 퍼뜨려, 
결국 이 '자살가게'를 망하게 할 아이-'알랭'-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자살을 가업으로 먹고 사는 집안에 천적으로 등장한 셋째 아이인 '알랭'을 둘러 싼 여러가지 에피소드들...
이 집안에 금기인 '미소' 와 '웃음'으로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가업이 제대로 굴러가질 못하게 만든다.
또, 어떠한 상황도 긍정적으로 해석해 버림으로써 
급기야 온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아버지 미시마를 돌아버리게 만들 지경인데...

<자살가게>  
즉, 이곳은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여러가지 용품들을 파는 곳이다.
댜양한 자살용품과 방법을 고안하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어서 돈을 벌어들인다.
'자살' 그 자체가 상품화되어 팔리게 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한번 쯤 '어떻게' 자살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주 하찮게 느껴지게 될 것 같다.

다른 '자살희망자들'의 행동을 무대 아래에서 지켜봄으로써,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치,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않는다면...
이 책의 전체를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결말의 반전!  
글쎄,
---뭐야 이거!!!  이럴지도... ㅎㅎㅎ 


<다음은 소설의 첫 부분이다.>

장밋빛 화사한 햇살 한 올 스며들지 않는 조그만 가게. 
창이라곤 출입문 바로 왼쪽에 하나뿐인데, 
그나마 깔때기 모양의 종이봉투들과 판지 상자들이 잔뜩 쌓여 있어 가려진 상태고
빗장에는 석판이 한 장 매달려 있다.

천장의 네온 불빛 아래, 
어느 늙은 부인이 회색 유모차 속 아기에게 다가간다.
"아이고, 애가 웃네!"
그러자 창가 금전등록기 앞에 앉아 계산에 열중하던 보다 젊은 여자가 발끈한다.
"제 아들녀석이 웃다뇨. 설마요! 웃는 게 아닐 겁니다. 
아마 입가 주름이겠죠. 걔가 왜 웃겠어요?"

그러고는 다시 계산에 몰두하자, 
늙은 여자손님은 덮개가 젖혀진 유모차 주위를 천천히 돌며 살펴본다.
지팡이를 짚느라 걸음걸이가 엉거주춤 부자연스럽다.
백내장으로 시야가 부연 - 흐리멍덩 안쓰러운 - 다 죽어가는 눈빛으로 다시 노파가 입을 연다.
"아무래도 웃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튀바슈 가문 사람은 결코 웃지 않는걸요!"

아기 엄마는 얼른 계산대 너머로 몸을 내밀어 확인해보더니, 
바짝 고개를 들고 가느다란 목을 쭉 뽑으며 소리쳐 부른다.
"미시마! 이리 좀 나와봐요!"
그와 동시에 바닥의 뚜껑문이 입처럼 빠끔히 열리면서 글자 그대로 대머리 하나가 불쑥 나타난다.
"뭐야? 무슨일인데?"

지하실에서 나온 미시마 튀바슈가 안고 있던 시멘트 부대를 타일바닥에 내려놓는 동안 아내의 설명이 이어진다.
"손님께서 자꾸 알랑이 웃는다고 하시네요."
"오, 뤼크레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옷소매에 묻은 시멘트 가루를 툭툭 털며 아기에게 다가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사내는 진단을 내린다.
"틀림없이 배앓이를 하는 거야. 흔히 그러면 입가 주름이 이런 식으로 생기거든……"
 
그러면서 두 손을 나란히 수평으로 움직여 얼굴에 주름 생기는 시늉을 해 보인다.
" …… 간혹 웃는 걸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인상을 찌푸리는 거지."
사내는 유모차 덮개 아래로 손을 쑥 집어넣으면서 노파 더러 보라고 한다.
"이것 좀 보십쇼. 내가 얘 입가를 턱 쪽으로 쑥 미니까, 어때요, 더이상 웃지 않죠?
위의 애들이 다 그렇듯이 얘도 태어날 때부터 한 인상 한답니다."

"어디, 놔보세요."
사내가 그대로 하자, 손님은 금세 이렇게 소리친다.
"아, 거 봐요, 웃잖아요!"
순간, 미시마 튀바슈는 떡하니 버티듯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역정을 낸다.

"그나저나 댁은 원하는 게 뭐요?"
"목매달 밧줄을 하나……"
"지금 사시는 곳 천장은 높은가요? 잘 몰라요? 그럼 이걸 가져가보시죠. 2미터 정도면 충분할 거외다……"
사내는 선반에서 삼으로 꼰 밧줄을 하나 꺼내는 동안에도 계속 이죽거린다.
"……매듭은 미리 다 돼 있습니다!  그냥 머리만 집어넣으면 되요."

부인은 값을 지불하면서도 유모차 쪽을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니까."
"그래요, 그래. 어련하시겠소!  자자,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나 해요. 가서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게 좋겠구려."

미시마가 으르렁대자, 잔뜩 풀 죽은 노파는 어깨에 밧줄을 감아 걸친 채 음산한 하늘 아래로 걸어간다.
그제야 주인은 가게 안으로 홱 돌아서며 내뱉는다.
"휴, 속이 다 시원하네!  저 할망구 괜히 지랄이야. 웃긴 누가 웃는다고 그래."

그런데 저 혼자 흔들거리고 있는 유모차 옆에 웬일인지 아기 엄마가 멍하니 붙어서 있다.
끽끽거리는 용수철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유모차 안에서는 아기의 옹알이에 섞여 가끔씩 터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그 양옆, 아기 부모는 기겁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서 있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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