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9. 11. 23:10

이외수의 생존법---하악하악

 
우선 책 제목부터가 사람이 신경 쓰이게 한다.
목차를 대충 훓어보니 내가 잘 모르는 말도 많다.
그 예로 캐안습!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이지? 
하는 수 없이 인터넷 서치를 통하여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어라는 것은 사회성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뜻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가 사회성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그가 아직 사회성을 확보하지 못한 단어들을 사용한 때문일까?

하지만 이 책이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오른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별 문제없이 이 책을 소화해 냈다는 건데...    

하여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책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에 먼저 싱긋 웃음이 나온다.
책 표지에 나타나 있는 그의 표정... 
그리고...'아~ 이. 이빨...'
환갑이 넘은 나이임을 까맣게 잊게 하는 그 익살...
전에 쓴 <감성사전>에서 진작 알아 봤지만, 크~ 여전히 우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Q.Q 책 표지에  올려져 있는 글 하나!!!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 개인적으로는 제일 마음에 드는 글이다.

+++  기발한 언어유희로 웃음과 진한 여운을 주는 글 +++

젊은이여.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번 들여다보라. 욕망은 그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 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앉고 말리라. 하악하악.

때로 이외수가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책을 읽고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책값이 아깝다고 투덜거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털썩입니다. 새로 구입한 천체망원경으로 곰팡이를 들여다보았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천체망원경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는 소임을 맡긴 다음 볼일을 보고 돌아왔더니,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뼈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양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 갑자기 생선이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고양이의 살점을 모조리 뜯어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흠좀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수시로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진다.

연가시라는 생물이 있다. 일급수 이상에만 서식한다. 철사벌레라고도 한다. 실같이 단순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정 기간 곤충의 몸속에 기생하다가 성충이 되면 곤충의 뇌를 조정해서 곤충이 물에 뛰어들어 자살토록 만드는 생물이다. 때로는 인간들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쾌락의 늪에 뛰어들어 자멸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혹시 의식 속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허욕의 연가시가 기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크읔~ 정말 소리내어 웃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글 +++

 ***외롭지 시리즈***

1. 내 딴에는 심혈을 기울여 소를 그렸는데 남들이 말이라고 우기면 여물을 씹어 먹고 싶을 정도로 외롭지 말입니다.

2. 동네 꼬마들 만화영화 구경시켜 준답시고 극장에 데리고 갔을 때, 주인공 로봇이 악당 때려 부수기 위해 출동하면 극장을 가득 메운 초딩들 힘차게 주제가 따라 부르지 말입니다. 그때 저만 가사를 몰라서 뻘쭘하게 입 다물고 있으면 갑자기 2분 정도는 참 외롭지 말입니다.

3. 고속버스 안에서 장시간 요의를 참고 있으면 휴게소가 나타날 때까지 방광이 터질 듯한 외로움이 계속되지 말입니다. 

4. 때로는 날 보고 이외수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쩐다.

5. 나는 실연의 상처 때문에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있는데 식구들은 이박삼일 동해안으로 피서를 떠나버리고 냉장고마저 텅 비어 있지 말입니다. 하나님. 지금이 바로 동해물과 백두산을 이박삼일 동안만이라도 마르고 닳도록 만드실 기회입니다. 라고 청원해도 하나님은 무응답. 이럴 때는 온 세상이 정말 외롭지 말입니다.

+++ 제목이 너무나 멋들어진 글들 +++
 
@.@ 하수와 고수
 날파리 한 마리가 하악하악.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하악하악. 자기가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하악하악. 큰소리를 치지만 하악하악. 정작 호랑이는 이 세상에 날파리라는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

@.@ 지성을 초월한 대화
 모기가 스님에게 물었다. 파리가 가까이 가면 손을 휘저어 쫓으시면서 우리가 가까이 가면 무조건 때려 죽이시는 이유가 뭡니까. 스님이 대답했다. 얌마. 파리는 죽어라 하고 비는 시늉이라도 하잖아. 모기가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그래도 불자가 어찌 살생을 한단 말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짜샤. 남의 피 빨아 먹는 놈 죽이는 건 살생이 아니라 천도야. 철썩!

마치 유머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글의 배경에 있는 그림들, 한국의 산천어를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재기 발랄한 작가의 입담을 차분히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글자만 읽으려면 서점에 서서도 다 읽겠으나, 행간을 읽으려면 따뜻한 차 한잔 준비해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할 듯.
 
내가 좋아하는 시 | Posted by Book Hana 2009. 9. 10. 21:30

그리운 모국어의 속살

" 문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이다. 
   그리고 시는 그 문학적 아름다움의 가장 윗자리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도 그리(^^) 아쉬울 것도 없는 문학!
그 문학에 자신의 전부를 바쳐가며 모국어의 속살을 아름답게 드러낸 50인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풍경을 
작가 나름의 필치로 적어나간 고종석의 <모국어의 속살>이란 책을 읽다!
문학평론가도 아니고 법학을 전공한 기자 출신의 작가가 시인들을 한 명 한 명씩 살펴 보며 스케치한 풍경들인데,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펼치는 시론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했다.

그 중에 김영승 시인의 「반성」시리즈가 눈길을 끌었다.

「반성 608」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는
나를 놓아 주신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깊은 상처를 입은 그 풍뎅이가 
곧, 이제 만신창이가 되어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대한 자신의 모습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렇다면 나를 불쌍히 여겨 놓아줄 이는...

이 시는 1987년에 출판되었다.
'나'는 바로,
그 80년대를 살아내야만 했던 그 시대의 상처입은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9. 8. 11:08

여름은 말없이 종말을 향해 가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타오르던 해바라기! 


9월

뜰이 슬퍼한다.
꽃 사이로 차가운 비가 내린다.
여름은 몸서리를 치며
말없이 종말을 향해 간다.

금빛으로 물든 나뭇잎이
키 큰 아카시아 나무에서 하나둘 떨어진다
여름은 시들어 가는 뜰의 꿈 속으로
놀란 듯 창백한 미소를 띄운다.

여름은 앞으로도 오래 장미 곁에
발길을 멈춘 채 안식을 그리리라.
그러고는 서서히 피곤에 겨운
큰 두 눈을 감으리라.


    
헤르만 헷세의 9월이란 제목의 시다.
뜨거운 햇살이 지겨워질 무렵, 
이 시를 읽으며, 하루빨리 구월이 되기를 기다렸다.

낮의 무더위를 식히려는 듯이, 폭풍이 몇 번 지나더니 어느새 찬기운이 돈다.
오래 전 이 시를 읽으며, 
계절이 뒷걸음치며 아쉬운 듯이 사라지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하며 감탄했던 때가 있었다.

시인은 화려한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지만,
간사한 나란 인간은 이제 어서 서늘한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도로에 가득한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늦은 가을날,
바람 가득 맞으며, 공원길을 산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