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13. 2. 27. 04:17

천년의 침묵



'피타고라스 정리는 정말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아! 학교 졸업하고, 수학책을 놓은 지가 언제인데... 뜬금없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이라니.

이민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동감하겠지만, 아이들 학교 수학공부도 거들어 주기가 쉽지 않다.

Primary School은 그렇다치고, Middle School만 해도 영어로 된 수학용어가 좀체 와닿지를 않는다. 

그러다보면 아이들이 먼저 눈치채고 아예 물어볼 생각도 않는다. 그저 자력으로 공부 잘 해주길 바랄 수 밖에... ^^

이런 판국에 피타고라스 정리라니... ㅠ.ㅠ


하지만 이 소설을 읽기 위하여 많은 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전혀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아주 유명한 수학적인 발견이고, 그 발견자는 수학사적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으면 된다.  


이 소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 사실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정리가 아니라는 도발적 전제에서 출발해, 

 전에 바빌로니아에서 이미 밝혀진 진리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고 하는 피타고라스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크로톤에서 수(Number)의 제국을 세운 현자 피타고라스의 학파에서 일어난 음모와 사건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 된다.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과 그들의 스승인 피타고라스가 진실의 은폐와 폭로를 두고 벌이는 암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살인범을 쫓는 추리소설적 구조에 로맨스,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풍경과 폴리스 사이의 정치 구도, 그리고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 피타고라스의 처 '테아노' 등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들을 등장시켜 팩션스타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가는 권력과 명예에 눈먼 피타고라스를 절대악으로 규명해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신이 발견하지 않은 수학적인 정리에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이고, 그것을 이용해서 사회적인 권력까지 추구하는 세속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일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                                                 

가까운 곳에서 예를 찾아보면, iPhone이나 iPad가 Apple사의 대표상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데, 우리는 스티브 잡스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가 어느정도 그 제품을 개발하는 데에 관여하였는 지는 모르지만, 많은 연구원들이 골머리를 싸매었을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당시 학파를 이끌던 피타고라스가 자기네 학파에서 재정립한 수학적인 정리를 '피타고라스의 정리'라고 명명한 것이 그렇게도 비난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사실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소설은 아주 재미나게 읽힌다. 작가가 오랫동안 구상하고 쓴 이야기인데다가, 문체도 비교적 간결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소설 번역본을 읽을 때 가끔 나타나는 걸리적거림이 없다. 이야기의 소재와 배경 그리고 등장인물은 고대그리스이지만 작가가 한국인인 탓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의 이력을 보면, 

중학교 수학교사로 지내면서 수학사를 다룬 책을  탐독하던  어느 날, 줄의 글이 이선영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우물에 빠뜨려 죽였다.’ 

작가는 처음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고, 창작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와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눈을 감고도 소설의 무대인 크로톤의 지도를 그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하늘빛과 바람의 냄새,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과 함께 하루하루 살아낸 작가 

마침내 마흔이 되어 장편을 완성했고, 년여에 걸친 수정 작업 끝에 이 작품은 2009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긴 소개가 되고 말았지만, 이 소설을 처음 봤을 때, '어떻게 피타고라스의 이야기를...' 이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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