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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6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이...<일기일회-법정> 2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안다면 순례자나 여행자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감사하면서, 나눠 가지면서 삶을 삽니다.
집이든 물건이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구도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 삶에서 지녔던 것을 때로는 모두 내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많은 과정과 곡절을 겪으면서 때로는 내려놓았고, 또 새롭게 갖곤 했습니다.
한 생의 과정이 다 그렇습니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선한 일 자체에 묶여 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버림, 진정한 선함이 아닙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그렇게 스쳐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덕이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내가 늘 기억한다고 해서 공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에도 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때 가서 아까워하며 망설일 것 없이,
내려놓는 일을 미리부터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 법문집 <일기일회> 중에서


요 며칠 계속해서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퍼붓고 있습니다.
살고 있는 집에서는 덩달아  기다렸다는 듯이 힘든 일이 생깁니다.

지하실에 흘러 들어온 물을 퍼내면서
옛날 들었던 거지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거지 아버지가 거지 아들과 함께 언덕 위에서 마을 아래 불이 난 집을 보면서...
" 아들아!  집이 있으면 저렇게 걱정도 많아진단다. 우린 집이 없으니 불이 날 걱정도 없지 않느냐? "  ^^

정신 없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갑자기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순간도 지나가리라!'
머지 않아 비가 멎으면 지금 이 순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노동도 곧 정리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스님의 글들을 새삼 읽으며, 
내가 선 이 자리,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지켜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리라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