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영화와 만나다 | Posted by Book Hana 2009. 6. 2. 00:56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로 최근에는 영화로 개봉이 되기도 했었던 작품이다.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헌신'이라는 말이 걸렸다. '헌신'이라는 말은 몸을 바치다. 즉, 자신을 희생하여 기꺼이 남을 구한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헌신'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싶었다.

천재적인 수학자로 수학에 모든 것을 바치던 즉 '헌신'하던 이시가미!  이시가미는 우연히, 옆집에 살던 모녀가 저지런 살인 사건에 끼어들면서 그의 천재적인 머리는 완벽한 범행의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그의 도움을 받아 모녀는 큰 어려움없이 살인 혐의를 벗어갈 즈음,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한 천재 물리학자인 유가와가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차츰 그 완벽한 알리바이가 베일을 벗게 되는데...

소설의 첫 장면은 이시가미의 무미건조한 일상의 묘사에서 시작된다. 세상사에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의 시선, 하지만 그주변에 대한 관찰은 예리하다. 노숙자들이 모여 사는 신오하시교를 지나며 그곳에 사는 사람에 대하여 자잘한 일면까지도 파악하고 있다. 사소한 단서로 많은 것을 통찰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세상에 대한 무관심과 세상으로터의 단절감을 안고 살아가던 이시가미에게 유일하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시가미가 자살하려는 순간 밝고 환하게 웃으며 옆집으로 이사왔다며 첫인사를 건넸던 아스코!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하직하려는 순간 만난 그 모녀는 그가 유일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옆집에서 들려오는 모녀의 대화로 그의 인생은 새로움으로 가득차게 된다.

여태까지 그의 생이 수학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이었다면, 이제 그는 모녀에 대한 남모르는 '헌신'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모녀에게 위험이 닥치자, 이시가미는 당연히 그 둘을 보호하기 위해서 새로운 알리바이를 만들게 되는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명할 수 없는 완벽한 알리바이!
여기서 이시가미의 '헌신', 아무 댓가없는 절대적인 사랑이 바쳐진다.

하지만 역시 천재적인 물리학자인 유가와에 의해서 서서히 그 완벽한 헌신이 흔들리게 되는데...

추리 소설의 즐거움은 어떻게 열쇠가 풀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결말을 말할 수는 없지만, 유가와에 의한 추리에 따라 서서히 흔들리는 이시가미의 가설이 절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보통 추리 소설을 읽을 때면 살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주 관심사이지만 이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유가와의 날카로운 추적이 안타깝기만 했다. ^^

하루 꼬박 이 소설을 읽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날, 머리 속에는 온통 이 이야기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는 영화를 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이시가미보다는 좀 잘 생긴 배우가 나왔다. 그의 표정이 아주 무미건조하고 까칠하게 나타난 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비슷했다. 영화는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거기서 사용하는 대사도 아주 똑같다.
물론, 영화적인 즐거움을 위해서 이시가미와 유가와가 눈덮힌 설산을 오르는 장면, 유가와와 여형사간의 러브 라인도 살짝 더해지긴 했지만...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역시 결말 부분에서의 반전에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의 결말에 다다른 독자라면 누구나 이 글의 제목 '용의자의 헌신'이라는 말에서 '헌신'이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소설, 영화와 만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 카레니나 - 1997년  (0) 2009.11.13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1) 2009.05.09
뉴욕은 언제나 사랑 중  (0) 2009.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