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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 Posted by Book Hana 2009. 4. 17. 11:54

지상에 숟가락 하나-국방부 금서???


오늘 뉴스 시간...국방부 금서목록지정에 반발했다 해고 당한 군법무관들 항소 운운...

그런데 금서 목록 중 현기영의 장편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라는 책이 화면에 비쳤다.
우리집 서가에도 그 책이 있는게 생각이 나 빼어 들었다.  웬 금서???
이 책의 표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 ***라는 글이 ...

"---살아서 박복했던 아버지는 그래도 죽음만큼은 유순하게 길들일 줄 알았나 보다. 이렇다 할 병색도 없이 갑자기 식욕을 잃더니 보름 만에 숟갈을 아주 놓아버린 것이었다.---"
이 책의 시작이다.

'죽다'라는 말과 관계된 우리말의 다양함이란...
숟가락을 놓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게 표현하다니)

"그때처럼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 날 급습하여 아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그러므로 부친의 영전에서 맏상제로서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필경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것은 아니지 않은가...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유년 시절로 돌아가 어두운 망각의 늪에 빠져 있던 기억들을 살림으로써 어제와 오늘, 탄생과 죽음, 과거와 현재가  결코 따로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주인공이 태어난 해방 전후의 6년 간 살았던 그 곳-4.3 사건의 와중에 시커멓게 타버리고 폐허가 되어버린- 함박이굴에서의 외로운 삶과 그 시대를 살아낸 토착민의 신산한 삶을 시작으로 주인공의 유년 시절 그리고 사춘기를 겪으며 문학 소년으로 커나가는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1940년대 이후를 살아낸 우리 아버지들의 우습고도 슬픈 어린 시절의 모습.
 제주도 특유의 자연과 풍습.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되어서 나 자신이 그 유년 시절을 따라 살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
읽는 내내 웃음과 지긋한 아픔 그리고 설레임이 있었다.

한 소년의 성장 소설이라 할 이 작품이 금서 목록에 오르다니...
아직까지 이렇게 집요하게 감추고 싶은 사실이 많은 집단은 누구일까?
한 때, 대학생들이 교양으로 보던 사회 과학 서적들이 어느새 금서 목록에 오르고,
그 책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용공시 되고
경찰 조사를 받던 그 암울한 시절의 기억이
새삼 가슴을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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